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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형갑(尹衡甲)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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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임지(任之)
시호(諡號)충강(忠康)
생년1585(선조 18)
졸년1618(광해군 10)
시대조선중기
본관남원(南原)
활동분야문신
윤섬(尹暹)

[상세내용]

윤형갑(尹衡甲)
1585년(선조 18)∼1618년(광해군 10) 8월 10일.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임지(任之)이다. 본관은 남원(南原)이고, 출신지는 한양(漢陽)이다.

증조부는 윤징(尹澄)이고, 조부는 선조 때 창원부사(昌原府使)‧호조참판(戶曹參判) 등을 지낸 윤우신(尹又新)이며, 부친은 선조 때 광국공신(光國功臣) 2등으로 녹훈되었으며 임진왜란 때 순절한 윤섬(尹暹)이다. 모친은 원경심(元景諶)의 딸인 원주원씨(原州元氏)이고, 부인은 황치경(黃致敬)의 딸인 창원황씨(昌原黃氏)이다.

1606년(선조 39) 증광시에 진사 3등 50위로 입격하였고, 1610년(광해군 2) 식년시에 병과 4위로 문과 급제하였으며,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형조좌랑(刑曹佐郞)‧부안현감(扶安縣監) 등을 지냈다.

1613년(광해군 5)에 계축옥사(癸丑獄事)가 일어나서 영창대군(永昌大君)이 서인(庶人)으로 강등되자 벼슬을 그만두었고, 이후 평안도도사(平安道都事)‧태천현감(泰川縣監)‧서흥현감(瑞興縣監)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또 1618년에 인목대비(仁穆大妃)가 서궁(西宮)에 유폐되자 비분강개하였다.

1618년에 34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1796년(정조 20)에 자헌대부(資憲大夫)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충강(忠康)이다.

[참고문헌]

光海君日記國朝文科榜目忠康公 尹衡甲 諡狀
CD-ROM 司馬榜目(韓國學中央硏究院)

[집필자]

노인환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