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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수경(權守經)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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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자정(子正)
호(號)자락당(自樂堂)
호(號)사재당(思齋堂)
생년1584(선조 17)
졸년1659(효종 10)
시대조선중기
본관안동(安東)
활동분야학자 > 유생

[상세내용]

권수경(權守經)
1584년(선조 17)∼1659년(효종 10). 조선 중기 학자‧의병장. 자는 자정(子正)이고, 호는 자락당(自樂堂)‧사재당(思齋堂)이다.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출신지는 경상북도 의성(義城)이다.

예학에 정통한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문인이다.

제릉참봉(齊陵參奉)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고, 자신을 수양하는 학문과 후진 양성에만 전념하였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을 당했을 때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천거와 함께 마을사람들의 추대로 의성의병장(義城義兵將) 겸 좌도의병도유사(兼左道義兵都有司)로서 많은 활약을 펼쳤다. 이때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가 표(表)를 올려 조정으로부터 공적을 치하 받았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발발했을 때도 의병장으로서 활약하다가 청나라와 강화를 맺었다는 소식에 은거하였다. 이때 그의 행적을 송시열(宋時烈)이 특계(特啓)로 올려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使)에 추증되었으며, 1870년(고종 7)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19세기에 들어서서 고향이 같은 단구신씨(丹邱申氏) 집안에서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의병장은 자신들의 선조인 호계(虎溪) 신적도(申適道)였으며, 권수경(權守經)은 단지 곡물 수집에 임했을 뿐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이에 권씨 문중에서는 병자호란 당시 권수경의 활약을 확인해 줄 수 있는 사적과 서원‧향교의 공사문서 등을 모아 『자락당선생실적변증록(自樂堂先生實蹟辨證錄)』을 편찬하여 단구신씨 집안의 주장을 변증하였다.

유고로 『자락당선생유집(自樂堂先生遺集)』이 전해진다.

[참고문헌]

自樂堂先生實蹟辨證錄
自樂堂先生遺集

[집필자]

이원배
수정일수정내역
2010-10-23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