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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부(李聖符)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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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존중(存中)
시호(諡號)충장(忠壯)
생년1583(선조 16)
졸년1624(인조 2)
시대조선중기
본관전주(全州)
활동분야무신 > 무신
이문익(李文益)

[상세내용]

이성부(李聖符)
1583년(선조 16)∼1624년(인조 2).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존중(存中). 정종의 9대손으로, 참봉 이문익(李文益)의 아들이다.

1608년(광해군 즉위)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이 되고, 이어 비국랑(備局郞)으로 정승 이덕형(李德馨)이항복(李恒福)의 공첩(公牒)을 맡아 처리하였다.

그뒤 도총부도사에 승진하여 경력으로 전직되었다가 문천군수로 나갔다. 북청의 성역(城役)이 있자 병사의 계청으로 중군이 되어 일을 잘 감독하여 통영우후(統營虞侯)로 승진하였고, 또 전선(戰船)을 수리한 공으로 가선계(嘉善階)에 올랐다.

1619년 심하역(深河役) 등으로 요동에 군대가 파병되고 서쪽 변경에 위협이 있자, 만포첨사(滿浦僉使)에 제수되어 상로대장(上路大將)을 겸임하였으나 1613년 계축옥사에 연루되어 삭직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 때 이괄(李适)과 함께 선봉장이 되어 공을 세웠고, 또 강화부사로 나가 수군의 반발을 평정하였다. 이 공로로 자헌(資憲)의 품계에 올라 훈련원도정이 되었고, 이듬해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우방어사좌방어사 이중로(李重老)와 더불어 평산의 저탄(猪灘)에 진을 치고 반군과 대전하였으나 패전하자 물에 투신, 자결하였다. 난이 평정된 뒤 병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충신정문(忠臣旌門)이 세워졌다.

1684년(숙종 10)에 금천민충사(愍忠祠)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참고문헌]

光海君日記
仁祖實錄
國朝人物考
燃藜室記述

[집필자]

이장희(李章熙)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