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혐(李尙馦)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74C0C1D610B1581X0 |
자(字) | 청보(淸甫) |
생년 | 1581(선조 14)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영해(寧海) |
활동분야 | 문신 |

부 | 이오(李璈) |

[관련정보]
[상세내용]
이상혐(李尙馦)
1581년(선조 14)~미상.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청보(淸甫)이다. 본관은 영해(寧海)이다. 거주지는 강원도 강릉(江陵)이다.
증조부는 이언신(李彦臣)이고, 조부는 이윤(李嵂)이며, 부친은 전적(典籍) 이오(李璈)이다. 외조부는 채흥후(蔡興後)이고, 처부는 황정(黃珽)이다. 동생은 이상빈(李尙馪)이다.
1606년(선조 39) 증광시에서 진사 3등에 2위로 합격하였고, 1615년(광해군 7) 식년시에서 병과 1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관직은 성균관직강(成均館直講)‧남양부사(南陽府使) 등을 역임하였다.
1615년(광해군 7) 식년 문과에 함께 급제한 김구(金榘)‧김언(金琂)‧박조(朴簉)‧송도남(宋圖南)‧이기조(李基祚)‧이계선(李繼先) 등과 함께 승문원(承文院)에 간택되었다. 1630년(인조 8) 성균관직강에 재임 중 사예(司藝)로 제수될 당시 인품이 경박하다는 이유로 논박당하여 취소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재차 사예로 제수되었는데, 또한 반대 여론으로 제수되지 못하였다. 또한 이 일로 이상혐(李尙馦)을 사예로 거듭 추천한 당상과 낭청의 신료들까지 죄를 물어야 한다는 사간원(司諫院)의 상소도 올라갔었다. 1642년(인조 20) 남양부사 재임 시절 재물을 탐하고 백성을 괴롭힌 실정(失政)이 조정에 알려져 파직되었다.
증조부는 이언신(李彦臣)이고, 조부는 이윤(李嵂)이며, 부친은 전적(典籍) 이오(李璈)이다. 외조부는 채흥후(蔡興後)이고, 처부는 황정(黃珽)이다. 동생은 이상빈(李尙馪)이다.
1606년(선조 39) 증광시에서 진사 3등에 2위로 합격하였고, 1615년(광해군 7) 식년시에서 병과 1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관직은 성균관직강(成均館直講)‧남양부사(南陽府使) 등을 역임하였다.
1615년(광해군 7) 식년 문과에 함께 급제한 김구(金榘)‧김언(金琂)‧박조(朴簉)‧송도남(宋圖南)‧이기조(李基祚)‧이계선(李繼先) 등과 함께 승문원(承文院)에 간택되었다. 1630년(인조 8) 성균관직강에 재임 중 사예(司藝)로 제수될 당시 인품이 경박하다는 이유로 논박당하여 취소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재차 사예로 제수되었는데, 또한 반대 여론으로 제수되지 못하였다. 또한 이 일로 이상혐(李尙馦)을 사예로 거듭 추천한 당상과 낭청의 신료들까지 죄를 물어야 한다는 사간원(司諫院)의 상소도 올라갔었다. 1642년(인조 20) 남양부사 재임 시절 재물을 탐하고 백성을 괴롭힌 실정(失政)이 조정에 알려져 파직되었다.
[참고문헌]
CD-ROM 司馬榜目
國朝文科榜目
光海君日記
仁祖實錄
國朝文科榜目
光海君日記
仁祖實錄
[집필자]
이은영
수정일 | 수정내역 |
---|---|
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