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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로(柳莘老)

[요약정보]

UCIG002+AKS-KHF_13C720C2E0B85CB1581X0
자(字)은수(殷叟)
호(號)춘포(春圃)
생년1581(선조 14)
졸년1648(인조 26)
시대조선중기
본관전주(全州)
활동분야문신 > 문신
유유(柳愉)
공신호1등소무원종공신(一等昭武原從功臣)

[상세내용]

유신로(柳莘老)
1581년(선조 14)∼1648년(인조 26).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은수(殷叟), 호는 춘포(春圃).

증승정원 좌승지(贈承政院左承旨) 유유(柳愉)의 아들이다. 최명룡(崔命龍)의 문하(門下)에서 수학(修學)하였다. 인조 2년(1624) 이괄(李适)의 난(亂) 때 포의(布衣)로 『창의격문(倡義檄文)』을 지어 발송(發送)하고 군사(軍士)와 식량을 모아 임금을 호종(扈從)하였다. 문과(文科)에 급제(及第)하여, 성균관(成均館)학유(學諭), 학정(學正), 전적(典籍)양현고(養賢庫)봉사(奉事) 등을 역임(歷任)하였다. 이인거(李仁居)의 반란을 진압하는데 공을 세워 1등소무원종공신(一等昭武原從功臣)에 책록(冊錄)되었다. 인조 9년(1631) 공조좌랑(工曹佐郞), 보령현감(保寧縣監)을 거쳐 형조좌랑(刑曹佐郞)춘추관기사관(春秋館記事官)을 겸임(兼任)하다가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일어나자 남한산성(南漢山城)으로 임금을 배종(陪從)하였다. 그는 화의(和議)에 적극 반대하였다. 한성부서윤(漢城府庶尹), 춘추관편수관(春秋館編修官), 보성군수(寶城郡守), 창원대도호부사(昌原大都護府使) 등을 역임(歷任)하였다. 승정원도승지(承政院都承旨)에 추증(追贈)되었다. 저서(著書)로 『춘포유고(春圃遺稿)』 1권 1책이 있다.

[참고문헌]

春圃遺稿(柳莘老)
朝鮮人名辭書

[집필자]

김학경
수정일수정내역
2008-12-312008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