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한원(韓瑗)

[요약정보]

UCIG002+AKS-KHF_12D55CC6D0FFFFB1580X0
자(字)백옥(伯玉)
생년1580(선조 13)
졸년?(미상)
시대조선중기
본관신평(新平)
활동분야외교 > 역관
한언침(韓彦忱)

[상세내용]

한원(韓瑗)
1580년(선조 13)∼미상. 조선 중기의 역관. 본관은 신평(新平). 자는 백옥(伯玉). 한언침(韓彦忱)의 아들이다.

여러 차례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낙방하고 1606년에 한어역과에 합격하여 사역원에서 벼슬을 시작하였다.

1629년(인조 7) 진하사 이흘(李忔)의 상통사(上通事)로 북경에 가다가 옥전현(玉田縣) 찰원(察院)에 이르렀을 때 밥짓는 사람이 손에 『주역(周易)』을 들고 읽고 있는 것을 보고 괴이하게 여겨 물었더니, 그는 가난한 선비인데 궁하여 먹을 길이 없어 고용되어 관부(館夫)가 된 사람이었다.

마음 속으로 그 선비를 불쌍히 여겨 전대(纏帶)의 은 30냥을 꺼내주었다.

그뒤 수로로 중국에 가다가 갑자기 광풍을 만나 등주(登州)의 해안에 표박하였는데, 해안을 방비하는 병졸들이 발견하여 위협을 하면서 배를 돌려 가라 하므로 모두 창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때 홀연히 한 관원이 가마를 타고 일산(日傘)을 끼고 수문 어귀를 지나가므로 그가 관원 앞으로 달려가 정상을 진술하였는데, 그 관원은 옛날 옥전현에서 밥을 짓던 사람이었다.

지난날 입은 은혜로 인한 극진한 보살핌으로 북경까지 갈 수 있도록 주선을 받는 한편, 백금 300냥과 채단 30필도 여비로 받아 무사히 북경에 들어가 소임을 마치고 돌아올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여순(旅順)항구에 이르러 또 태풍을 만나 구사일생으로 귀국하였다. 그 공로로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말년에는 벼슬을 그만두고 한거하면서 서사(書史)에 몰두하였다.

[참고문헌]

通文館志
燃藜室記述
朝鮮時代 雜科合格者總覽(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90)

[집필자]

주웅영(朱雄英)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