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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상(韓惟翔)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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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자익(子翼)
생년1578(선조 11)
졸년?(미상)
시대조선중기
본관청주(淸州)
활동분야문신
한윤관(韓胤寬)

[상세내용]

한유상(韓惟翔)
1578년(선조 11)~미상.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자익(子翼)이다.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증조부는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소격서영(昭格署令) 등을 역임하고 김일손(金馹孫) 등과 함께 사초문제에 연루되었던 한훈(韓訓)이고, 조부는 한곤(韓鵾)이며, 부친은 한윤관(韓胤寬)이다.

1605년(선조 38)에 증광시 진사 2등 14위로 입격한 후 1616년(광해군 8)에 증광시 을과 4위에 급제하였다.

이후 승정원주서(承政院注書)를 거쳐서 사간원정언에 임명되었는데, 1622년(광해군 14) 도목정사(都目政事) 때 한유상(韓惟翔)이 사간원정언에 제수된 것은 이이첨(李爾瞻)에게 붙었기 때문이라는 기록이 있다. 이후에 정사에서 유대건(兪大建)이 시배(時輩)와 무리지어 하나같은 소리로 맞장구치는 인물이라며 한유상을 폄하하는 상소가 올라와 체직을 청하였으나 허락을 받지 못하였다. 또한 훗날 인조반정(仁祖反正)을 성공시킨 이귀(李貴)‧김자점(金自點) 등이 반역을 꾸미고 있으므로 역모의 죄를 물어 토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한유상은 함안(咸安)으로 유배되었고, 1628년(인조 6)에는 단천(端川)으로 정배되었다.

[참고문헌]

光海君日記
仁祖實錄

[집필자]

손용석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