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강홍중(姜弘重)

[요약정보]

UCIG002+AKS-KHF_13AC15D64DC911B1577X0
자(字)임보(任甫)
호(號)도촌(道村)
생년1577(선조 10)
졸년1642(인조 20)
시대조선중기
본관진주(晉州)
활동분야문신 > 문신
강연(姜綖)

[상세내용]

강홍중(姜弘重)
1577년(선조 10)∼1642년(인조 20). 조선시대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임보(任甫), 호는 도촌(道村).

부친은 승지 강연(姜綖)이며, 장현광(張顯光)의 문인이다.

1603년(선조 36)에 생원진사시를 거쳐, 1606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등용되었으며, 병조좌랑통례(通禮) 등을 지냈다. 광해군주서(注書)를 지냈으며, 이어 세자시강원정언세자시강원문학 등을 거쳐 장령필선을 차례로 지냈다. 관직에 있으면서 정치수완이 뛰어나 많은 공적을 쌓았다.

1623년 인조반정 이후 문사랑청(問事郞廳)으로서 정치적 물의를 일으키던 대북파의 죄상을 다스렸다. 승문원판교를 지낸 뒤 회답부사(回答副使)일본에 다녀온 뒤 승진되어 군자감정에 올랐는데, 이때 일본의 화포술(火砲術)을 전하여 군에 실용하도록 하였다.

그뒤 강원도관찰사연안부사도총부총관을 지냈다. 강원감사로 있을 때 1633년(인조 11) 후금의 침입에 대비하여 영병(營兵)에 대한 조총의 공급, 화약의 지급 등을 주청하여 실행하였고, 포수의 훈련 등에 열중하여 많은 공을 세웠다. 또한 공평한 세의 부과에도 최선을 다했다.

1635년에는 명나라 도독의 협판사가 되어 활약하면서 명나라의 사정과 후금의 동정을 조정에 보고하였다. 청송부사(靑松府使)동지의금부사 등을 거쳐 성천부사(成川府使)를 지냈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光海君日記
仁祖實錄
國朝榜目
典故大方

[집필자]

이희권(李羲權)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