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주(權𪐴)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AD8CC8FCFFFFB1576X0 |
자(字) | 자지(子止) |
호(號) | 춘수당(春睡堂) |
호(號) | 모명재(慕明齋) |
생년 | 1576(선조 9) |
졸년 | 1651(효종 2)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안동(安東) |
활동분야 | 호국 > 의병 |


[상세내용]
권주(權𪐴)
1576년(선조 9)∼1651년(효종 2). 조선 중기 의병. 자는 자지(子止)이고, 호는 춘수당(春睡堂)‧모명재(慕明齋)이다.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출신지는 경상북도 영천(榮川)이다.
조부는 권유년(權有年)이고, 부친은 통훈대부(通訓大夫) 전행간성군수(前行杆城郡守) 권두문(權斗文)이다. 2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고, 형 권점(權點)이 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부친을 따라 평창(平昌) 근무지에서 왜군을 막기 위해 매복시킨 군대와 함께 왜군들을 방어하다가 왜군에게 붙잡혔으나 바로 탈출하였다.
1605년(선조 38) 증광시 진사 2등 6위로 합격하였으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자신을 수양하고 독서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청나라와 화친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세상과 단절한 채 당호(堂號)를 ‘춘수당’‧‘모명재’라 일컬으며 끝까지 절개를 꺾지 않았다.
슬하에 형 권점에게 양자로 보낸 아들 권후(權垕)가 있다.
병남서원(屛南書院)에 배향되었다.
조부는 권유년(權有年)이고, 부친은 통훈대부(通訓大夫) 전행간성군수(前行杆城郡守) 권두문(權斗文)이다. 2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고, 형 권점(權點)이 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부친을 따라 평창(平昌) 근무지에서 왜군을 막기 위해 매복시킨 군대와 함께 왜군들을 방어하다가 왜군에게 붙잡혔으나 바로 탈출하였다.
1605년(선조 38) 증광시 진사 2등 6위로 합격하였으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자신을 수양하고 독서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청나라와 화친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세상과 단절한 채 당호(堂號)를 ‘춘수당’‧‘모명재’라 일컬으며 끝까지 절개를 꺾지 않았다.
슬하에 형 권점에게 양자로 보낸 아들 권후(權垕)가 있다.
병남서원(屛南書院)에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國朝文科榜目
CD-ROM 司馬榜目(韓國精神文化硏究院)
CD-ROM 司馬榜目(韓國精神文化硏究院)
[집필자]
이원배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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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