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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달도(申達道)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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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형보(亨甫)
호(號)만오(晩悟)
생년1576(선조 9)
졸년1631(인조 9)
시대조선중기
본관아주(鵝洲)
활동분야문신 > 문신
신흘(申仡)
조부신원록(申元祿)

[상세내용]

신달도(申達道)
1576년(선조 9)∼1631년(인조 9).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아주(鵝洲). 자는 형보(亨甫), 호는 만오(晩悟). 참의 신원록(申元祿)의 손자이고, 신흘(申仡)의 아들이다.

조목(趙穆)장현광(張顯光)의 문인으로 1610년(광해군 2)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나, 정계가 혼란하여 관직에 나아가는 것을 단념하였다.

1623년(인조 1) 5월에 명나라 희종(熹宗)의 등극을 기념하는 유생정시(儒生庭試)에 갑과로 장원급제하였다.

그뒤 문한관(文翰官)을 거쳐 1627년 사간원정언에 이어 곧 지평으로 승임되었다. 이해 6월 병조판서 이귀(李貴)의 전횡(專橫)을 배척하는 상소를 올려 이귀의 미움을 샀으며 부사직으로 전보되었다.

1629년 사헌부장령이 되었을 때, 내수사(內需司)가 진상을 과다히 강요하는 폐단을 일소하게 하라는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이보다 앞서 1627년 정묘호란 때 윤황(尹煌)과 함께 적극적으로 척화론을 주장하다가 파직되었다. 후일 도승지에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仁祖實錄
國朝榜目
嶺南人物考

[집필자]

이문기(李文基)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