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양(尹知養)
[상세내용]
윤지양(尹知養)
1575년(선조 8)∼미상.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유직(幼直)이다. 본관은 파평(坡平)이다.
증조부는 좌의정 윤개(尹漑)이고, 조부는 윤비(尹棐)이며, 부친은 윤담연(尹覃衍)이다. 생부 윤담휴(尹覃休)와 생모 원순보(元純輔)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1611년(광해군 3)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사관(史官)을 지냈다. 1612년(광해군 4) 이듬해 예문관검열‧대교‧겸설서‧봉교를 지내고, 1614년(광해군 6) 세자시강원사서‧병조좌랑의 직책을 맡았다. 1617년(광해군 9)에는 비변사에 의해 유장(儒將)으로 추천되었다. 전란 후 피폐된 지방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중화부사(中和府使)로 파견되어 임무를 수행하던 중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어 경내가 편안하였다는 이조의 추천으로 품계가 올라갔다.
증조부는 좌의정 윤개(尹漑)이고, 조부는 윤비(尹棐)이며, 부친은 윤담연(尹覃衍)이다. 생부 윤담휴(尹覃休)와 생모 원순보(元純輔)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1611년(광해군 3)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사관(史官)을 지냈다. 1612년(광해군 4) 이듬해 예문관검열‧대교‧겸설서‧봉교를 지내고, 1614년(광해군 6) 세자시강원사서‧병조좌랑의 직책을 맡았다. 1617년(광해군 9)에는 비변사에 의해 유장(儒將)으로 추천되었다. 전란 후 피폐된 지방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중화부사(中和府使)로 파견되어 임무를 수행하던 중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어 경내가 편안하였다는 이조의 추천으로 품계가 올라갔다.
[참고문헌]
光海君日記
國朝榜目
燃黎室記述
國朝榜目
燃黎室記述
[집필자]
김혜영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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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