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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상(李士祥)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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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선응(善應)
호(號)취아(醉啞)
생년1573(선조 6)
졸년1644(인조 22)
시대조선중기
본관용인(龍仁)
활동분야문신 > 문신
이계인(李啓仁)

[상세내용]

이사상(李士祥)
1573년(선조 6)∼1644년(인조 22).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선응(善應), 호는 취아(醉啞). 성균생원 이계인(李啓仁)의 아들이다.

8세 때에 아버지를 여의고 학문에 힘써 1605년(선조 38) 진사시에 합격하고, 광해군 때는 해곡(海曲)에 은거해 있다가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태학의 각종 논의를 장악하고 유안(儒案)을 정리하여 흉도(凶徒)를 척거하였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이 처형되자 정시(庭試)를 별도로 실시하였는데, 그는 공릉참봉으로 병과로 급제하여 관리로서 명성을 떨쳤고, 벼슬은 승지에 이르렀다.

성품은 간솔(簡率)하고 검소하였으며, 사람을 대할 때는 표리가 없었다. 시와 술을 좋아하였고 언의(言議)를 숭상하여 여러 학자들의 천거하는 바가 되었다.

대각(臺閣)에 처하여서는 항상 정의를 지키고 청렴결백하였으며, 고을을 다스리는 데에는 자혜로운 은혜로 대하여 퇴직할 즈음에는 송덕비를 세우고 칭송하는 사람이 많았다 한다.

[참고문헌]

仁祖實錄
國朝榜目
知守齋集

[집필자]

조정기(趙楨基)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