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린(李命麟)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74BA85B9B0B1628X0 |
생년 | 1572(선조 5) |
졸년 | 1633(인조 11)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전주(全州) |
활동분야 | 왕족 |
부 | 이기(李岐) |
[상세내용]
이명린(李命麟)
1572년(선조 5)~1633년(인조 11). 조선 중기 왕족.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부친은 중종의 아들인 덕양군(德陽君) 이기(李岐)이다. 형은 풍산군(豊山君) 이종린(李宗麟)‧풍성군(豊城君) 이희린(李希麟)이고, 동생은 풍해수(豊海守) 이계린(李季麟)이다. 첫째 부인은 봉천명(奉天命)의 딸 하음봉씨(河陰奉氏)이고, 둘째 부인은 신여환의 딸 평산신씨(平山申氏)이다.
선휘대부(宣徽大夫) 풍천수(豊川守)에 제수되었고, 후에 명선대부(明善大夫) 풍천도정(豊川都正)에 봉해졌다.
1601년(선조 34) 왕자 임해군(臨海君)의 지시를 받았다고 가장하여 촌가를 약탈하는 등의 악행을 저질렀다. 이 사실이 개성유수(開城留守) 유자신(柳自新)을 통해 밝혀져 탄핵을 당하였다. 이후 사헌부(司憲府)에서 재차 그의 악행을 거론하여 탄핵을 하였고, 그 결과 부산(釜山)으로 유배를 갔다. 그러나 유배지에서도 남의 부인을 겁간하는 등의 악행을 저질러서, 외딴곳으로 유배지를 옮겼다. 1608년(광해군 즉위년)에는 역모에 가담한 것으로 판단되어 의금부에서 국문(鞠問)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몇 차례의 심문이 계속되었지만, 끝내 역모 사실을 부인하였다.
부친은 중종의 아들인 덕양군(德陽君) 이기(李岐)이다. 형은 풍산군(豊山君) 이종린(李宗麟)‧풍성군(豊城君) 이희린(李希麟)이고, 동생은 풍해수(豊海守) 이계린(李季麟)이다. 첫째 부인은 봉천명(奉天命)의 딸 하음봉씨(河陰奉氏)이고, 둘째 부인은 신여환의 딸 평산신씨(平山申氏)이다.
선휘대부(宣徽大夫) 풍천수(豊川守)에 제수되었고, 후에 명선대부(明善大夫) 풍천도정(豊川都正)에 봉해졌다.
1601년(선조 34) 왕자 임해군(臨海君)의 지시를 받았다고 가장하여 촌가를 약탈하는 등의 악행을 저질렀다. 이 사실이 개성유수(開城留守) 유자신(柳自新)을 통해 밝혀져 탄핵을 당하였다. 이후 사헌부(司憲府)에서 재차 그의 악행을 거론하여 탄핵을 하였고, 그 결과 부산(釜山)으로 유배를 갔다. 그러나 유배지에서도 남의 부인을 겁간하는 등의 악행을 저질러서, 외딴곳으로 유배지를 옮겼다. 1608년(광해군 즉위년)에는 역모에 가담한 것으로 판단되어 의금부에서 국문(鞠問)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몇 차례의 심문이 계속되었지만, 끝내 역모 사실을 부인하였다.
[참고문헌]
光海君日記
宣祖實錄
宣祖實錄
[집필자]
정병섭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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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