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충립(柳忠立)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20CDA9B9BDB1572X0 |
자(字) | 가이(可移) |
호(號) | 쌍백(雙栢) |
생년 | 1572(선조 5)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문화(文化)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관련정보]
[상세내용]
유충립(柳忠立)
1572년(선조 5)∼미상. 조선 중기 문신. 자는 가이(可移)이고, 호는 쌍백(雙栢)이다. 본관은 문화(文化)이다. 증조부는 유잠(柳潛)이고, 조부는 문양부원군(文陽府院君) 유자신(柳自新)이다. 부친 유희견(柳希鏗)과 모친 기성군(簊城君) 이현(李俔)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광해군의 처조카이다.
1610년(광해군 2) 별시 문과에서 병과로 급제한 후 승정원주서‧겸설서‧정언‧수찬 등을 역임하였다. 1619년(광해군 11) 친적도감(親籍都監)의 도청(都廳) 업무를 행하였다. 도체찰사종사관의 직책을 지내고 어사가 되어 각 도의 군사들에게 왕의 분부에 따라 격려하는 임무를 맡았다. 또 서쪽 변방의 군무를 살피고 중앙으로 돌아와 동부승지를 지냈다. 후에 관직이 공조참의‧대사성에까지 올랐다.
1610년(광해군 2) 별시 문과에서 병과로 급제한 후 승정원주서‧겸설서‧정언‧수찬 등을 역임하였다. 1619년(광해군 11) 친적도감(親籍都監)의 도청(都廳) 업무를 행하였다. 도체찰사종사관의 직책을 지내고 어사가 되어 각 도의 군사들에게 왕의 분부에 따라 격려하는 임무를 맡았다. 또 서쪽 변방의 군무를 살피고 중앙으로 돌아와 동부승지를 지냈다. 후에 관직이 공조참의‧대사성에까지 올랐다.
[참고문헌]
光海君日記
國朝榜目
燃黎室記述
大東野乘
國朝榜目
燃黎室記述
大東野乘
[집필자]
김혜영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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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