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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효갑(邢孝甲)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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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성숙(誠叔)
생년1571(선조 4)
졸년?(미상)
시대조선중기
본관진주(晉州)
활동분야문신
형탁(邢鐸)

[상세내용]

형효갑(邢孝甲)
1571년(선조 4)~미상.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성숙(誠叔)이다. 본관은 진주(晉州)이다.

부친은 조산대부(朝散大夫) 군자감첨정(軍資監僉正)을 지낸 형탁(邢鐸)이다.

1610년(광해군 2) 식년시 생원 3등 46위로 입격하였고, 1616년(광해군 8) 별시에 46세의 나이로 응시하여 병과 15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박건갑(朴乾甲)‧유건갑(劉慶甲)과 합께 ‘대북3갑(大北三甲)’으로 불리면서 광해군 조에 활동했는데 모후(母后)를 폐위하도록 하는 등의 글을 올리기도 하였다. 1616년(광해군 8)에 광해군은 그가 미리 글을 지어 와서 별시 과거에서 부정을 저질렀고, 또한 글의 내용에 임금을 비방한 내용이 있다고 판단하여 형효갑(邢孝甲)이 올린 대책문이 질문에 맞지 않는다며 그의 글을 과방에서 빼라고 명하였다. 이때 승정원‧사헌부‧사간원에서 그를 옹호하였으나, 임금이 재차 급제자 명단에서 그를 뺄 것을 명했다. 이와 관련하여 원이곤(元以坤)은 과거가 공정하지 않고 대간이 당파를 두둔한다는 내용의 상소를 올리기도 하여 논란이 되었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이후 유배를 당하여 죽었다.

[참고문헌]

光海君日記

[집필자]

손용석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