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호(朴箎)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BC15D638FFFFB1567X0 |
자(字) | 대건(大建) |
생년 | 1567(선조 즉위) |
졸년 | 1592(선조 25)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밀양(密陽)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박천서(朴天敍) |
조부 | 박율(朴栗) |
[상세내용]
박호(朴箎)
1567년(선조 즉위)∼1592년(선조 25).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대건(大建). 장령(掌令) 박율(朴栗)의 손자이며, 박천서(朴天敍)의 아들이다.
1584년(선조 17) 18세로 친시문과에 장원하여, 수찬이 되고, 1592년 임진왜란 때 26세로 순변사(巡邊使) 이일(李鎰)의 종사관(從事官)이 되어 상주에서 싸우다가 윤섬(尹暹)‧이경류(李慶流) 등과 함께 전사하였다.
전사 당시 함양 사람 인언룡(印彦龍)에게 말하기를, “나는 18세에 장원급제하여 나라의 후한 은혜를 입었는데, 지금 전세가 이처럼 불리하니 내가 살아서 무슨 면목으로 왕을 뵐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당시 윤섬‧이경류 등과 함께 3종사관(三從事官)으로 일컬어졌다. 직제학(直提學)에 추증, 상주 충의단(忠義壇)에 봉향되었다.
1584년(선조 17) 18세로 친시문과에 장원하여, 수찬이 되고, 1592년 임진왜란 때 26세로 순변사(巡邊使) 이일(李鎰)의 종사관(從事官)이 되어 상주에서 싸우다가 윤섬(尹暹)‧이경류(李慶流) 등과 함께 전사하였다.
전사 당시 함양 사람 인언룡(印彦龍)에게 말하기를, “나는 18세에 장원급제하여 나라의 후한 은혜를 입었는데, 지금 전세가 이처럼 불리하니 내가 살아서 무슨 면목으로 왕을 뵐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당시 윤섬‧이경류 등과 함께 3종사관(三從事官)으로 일컬어졌다. 직제학(直提學)에 추증, 상주 충의단(忠義壇)에 봉향되었다.
[참고문헌]
國朝榜目
國朝人物志
國朝人物志
[집필자]
박정자(朴定子)
성명 : "박호(朴箎)"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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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