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대유(裵大維)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BC30B300C720B1563X0 |
자(字) | 자장(子張) |
호(號) | 모정(慕亭) |
생년 | 1563(명종 18)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분성(盆城)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배영(裵瑛) |
저서 | 『모정집』 |
[관련정보]
[상세내용]
배대유(裵大維)
1563년(명종 18)∼미상.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분성(盆城). 자는 자장(子張), 호는 모정(慕亭). 부정(副正) 배영(裵瑛)의 아들이다.
1590년(선조 23) 사마시에 합격, 1592년 임진왜란 때 의병을 모아 곽재우(郭再祐)를 도와 창녕의 화왕산성(火旺山城)을 수비하였다.
1608년 사과(司果)로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1612년(광해군 4) 지평을 거쳐 정언(正言)‧장령(掌令)‧겸필선(兼弼善)‧보덕(輔德)‧동부승지‧병조참의 등을 역임하였다.
계축옥사 때 죄인을 추국하는 일에 공을 세웠고, 특히 인목대비(仁穆大妃)의 폐모론에 적극 참여하였기 때문에 1623년 인조반정으로 삭직되었다. 문장과 글씨에 능하였으며, 특히 초서‧예서에 뛰어났다.
글씨로는 「기자정석각(箕子井石刻)」이 있으며, 저서로는 『모정집』이 있다.
1590년(선조 23) 사마시에 합격, 1592년 임진왜란 때 의병을 모아 곽재우(郭再祐)를 도와 창녕의 화왕산성(火旺山城)을 수비하였다.
1608년 사과(司果)로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1612년(광해군 4) 지평을 거쳐 정언(正言)‧장령(掌令)‧겸필선(兼弼善)‧보덕(輔德)‧동부승지‧병조참의 등을 역임하였다.
계축옥사 때 죄인을 추국하는 일에 공을 세웠고, 특히 인목대비(仁穆大妃)의 폐모론에 적극 참여하였기 때문에 1623년 인조반정으로 삭직되었다. 문장과 글씨에 능하였으며, 특히 초서‧예서에 뛰어났다.
글씨로는 「기자정석각(箕子井石刻)」이 있으며, 저서로는 『모정집』이 있다.
[참고문헌]
光海君日記
仁祖實錄
國朝榜目
朝鮮金石總覽
忘憂先生文集
仁祖實錄
國朝榜目
朝鮮金石總覽
忘憂先生文集
[집필자]
박정자(朴定子)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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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