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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경(南宮㯳)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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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여명(汝明)
호(號)풍계(楓溪)
생년1562(명종 17)
졸년?(미상)
시대조선중기
본관함열(咸悅)
활동분야문신 > 문신
남궁도(南宮渡)
고조부남궁찬(南宮璨)
외조부이진중(李震中)

[상세내용]

남궁경(南宮㯳)
1562년(명종 17)∼미상.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함열(咸悅). 자는 여명(汝明), 호는 풍계(楓溪).

고조부는 남궁찬(南宮璨), 부친은 남궁도(南宮渡), 모친은 이진중(李震中)의 딸이다.

1606년(선조 39) 사마시에 급제, 1612년(광해군 4)에 현감으로서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16년 행세자시강원필선으로 『선조실록』을 찬수하는 데 참여하였다.

이듬해 지평으로서 광해군의 처사를 지탄하는 흉격지변(兇檄之變)을 처리할 때 병을 핑계로 불참한 까닭에 체직되었다가 곧 검상사인을 역임하였다.

1618년 강홍립(姜弘立)도원수창성(昌成)에 갔을 때, 유장(儒將)으로 종사관이 되어 따라갔다가 기역마(騎驛馬)를 남용했다는 이유로 이듬해 1월에 물러났다.

1623년 인조반정 직후에는 삭직되었다.

그러나 대북파(大北派)에 적극 가담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뒤에 풀려나 1625년(인조 3)에는 사은사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629년 광해군에게 추천된 사람이라 하여 대간의 탄핵을 받은 바 있다.

[참고문헌]

光海君日記
仁祖實錄
國朝榜目
燃藜室記述

[집필자]

박정자(朴定子)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