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준(李壽俊)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74C218C900B1559X0 |
자(字) | 태징(台徵) |
호(號) | 용계(龍溪) |
생년 | 1559(명종 14) |
졸년 | 1607(선조 40)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전의(全義)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자호 | 지범재(志範齋) |
부 | 이제신(李齊臣) |
[관련정보]
[상세내용]
이수준(李壽俊)
1559년(명종 14)∼1607년(선조 40).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태징(台徵), 호는 용계(龍溪). 스스로 지범재(志範齋)라 하였다. 병마절도사 이제신(李齊臣)의 아들이다.
성혼(成渾)의 문인으로 1589년(선조 22) 사마시를 거쳐, 이듬해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승문원에 추천되었다가 주부‧감찰‧호조좌랑을 역임하고, 외직으로 나아가 통진현감이 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부녀자와 선비 및 양식을 통진에서 강화도로 보낸 뒤, 우성전(禹性傳) 등과 함께 경외(京外)에 흩어진 군졸들을 모아 왜적을 방어하고, 통진현을 안전하게 지키는 데 공을 세웠다.
1593년 예조정랑에 제수되었으며, 장악원첨정을 거쳐, 1595년 영해부사로 나아갔다.
1599년 강화부사‧봉상시첨정‧성균관사성‧사헌부장령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외직으로 종성‧강계‧나주‧광주(光州) 등의 부사와 목사를 제수받았으나 부임하지 않고, 그뒤 사복시정(司僕寺正)‧승문원판교(承文院判校)‧길주목사‧영흥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1606년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라 승문원판교로서 춘추관편수관을 겸하여 임진왜란 때 소실된 실록을 중인(重印)할 때 참여하였다. 이해에 정조사(正朝使)로 명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던 중 영평(永平)에서 병을 얻어 이듬해 봉산관(鳳山館)에서 죽었다.
성혼(成渾)의 문인으로 1589년(선조 22) 사마시를 거쳐, 이듬해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승문원에 추천되었다가 주부‧감찰‧호조좌랑을 역임하고, 외직으로 나아가 통진현감이 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부녀자와 선비 및 양식을 통진에서 강화도로 보낸 뒤, 우성전(禹性傳) 등과 함께 경외(京外)에 흩어진 군졸들을 모아 왜적을 방어하고, 통진현을 안전하게 지키는 데 공을 세웠다.
1593년 예조정랑에 제수되었으며, 장악원첨정을 거쳐, 1595년 영해부사로 나아갔다.
1599년 강화부사‧봉상시첨정‧성균관사성‧사헌부장령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외직으로 종성‧강계‧나주‧광주(光州) 등의 부사와 목사를 제수받았으나 부임하지 않고, 그뒤 사복시정(司僕寺正)‧승문원판교(承文院判校)‧길주목사‧영흥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1606년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라 승문원판교로서 춘추관편수관을 겸하여 임진왜란 때 소실된 실록을 중인(重印)할 때 참여하였다. 이해에 정조사(正朝使)로 명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던 중 영평(永平)에서 병을 얻어 이듬해 봉산관(鳳山館)에서 죽었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國朝人物考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國朝榜目
[집필자]
김해영(金海榮)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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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