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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할(申硈)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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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중견(仲堅)
생년1555(명종 10)
졸년1592(선조 25)
시대조선중기
본관평산(平山)
활동분야무신
신화국(申華國)

[상세내용]

신할(申硈)
1555년(명종 10)~미상. 조선 중기 무신. 자는 중견(仲堅)이다. 본관은 평산(平山)이다.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申崇謙)의 후손으로, 조부는 이조판서(吏曹判書) 신상(申鏛)이다. 부친은 증영의정(增領議政) 신화국(申華國)이고, 모친은 첨정 윤양정(尹讓貞)의 딸 파평윤씨이다. 임진왜란 당시 삼도도순변사(三道都巡邊使)로서 충주 탄금대(彈琴臺)에서 왜군과 전투를 벌인 신립(申砬)이 그의 형이다.

1583년(선조 16) 알성시 무과에 병과 24위로 합격하였다.

1589년(선조 22)에 비변사(備邊司)에서 무신을 채용하고자 할 때, 대사간(大司諫) 이산해(李山海)가 이순신(李舜臣)과 함께 그를 추천하기도 하였고, 경상좌수사(慶尙左水使)로 임명되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함경남도병사(咸鏡南道兵使)가 되어 선조를 호위하고, 한강을 지키는데 파견되었다. 이후 경기수어사(京畿守禦使)에 임명되어 도원수(都元帥) 김명원(金命元)‧도순찰사(都巡察使) 한응인(韓應寅)‧권징(權徵)‧이빈(李薲)‧이천(李薦)‧유극량(劉克良)‧변기(邊璣) 등과 함께 임진(臨津)을 지켰다. 1592년(선조 25) 5월 17일 임진강 하류에 숨어있던 왜적과의 전투에서 패하여 목숨을 잃었다. 1638년(인조 16)에 그의 충절을 인정하여 병조판서(兵曹判書)에 추증되었고 정려(旌閭)가 건립되었다.

묘와 정려는 처음 서울시 동작구 상도동(上道洞)에 건립되었으나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新豊面)으로 이전되었고, 정려는 1997년 공주시 향토문화유적 제26호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光海君日記

[집필자]

손용석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