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權暐)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AD8CC0C1FFFFB1552X0 |
이명(異名) | 권상(權) |
자(字) | 숙회(叔晦) |
호(號) | 옥봉(玉峰) |
생년 | 1552(명종 7) |
졸년 | 1630(인조 8)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안동(安東) |
활동분야 | 문학 > 문인 |
[상세내용]
권위(權暐)
1552년(명종 7)∼1630년(인조 8). 조선 중기 문인. 자는 숙회(叔晦)이고, 호는 옥봉(玉峰)이다.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출신지는 경상북도 안동이다.
부친은 권심행(權審行)이다. 부인은 순흥안씨(順興安氏)이다.
타고난 성품이 후덕하였으며, 행동거지는 늘 무게가 있었고, 기쁨과 분노를 얼굴에 드러내는 법이 없었다. 또 공부를 시작한 후로 공부에 게으름을 피운 일이 없었다.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유일재(唯一齋) 김언기(金彦璣)‧월천(月川) 조목(趙穆)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이른 나이에 동당별시(東堂別試)를 한 번에 통과하였으나 남성시(南省試)에서 낙방하였다. 늦은 나이에 다시 도전하여 1601년(선조 34) 식년시 문과에 급제한 후, 관직은 공조좌랑(工曹佐郞)‧해미현감(海美縣監)‧형조좌랑(刑曹佐郞)‧호조좌랑(戶曹佐郞)‧예조좌랑(禮曹佐郞) 등을 역임하였다. 1609년(광해군 1) 수성찰방(輸城察訪)에 제수되었으나 조정이 어수선하자 나아가지 않았으나, 1616년(광해군 8) 동경교수(東京敎授)에 제수되자 후학들을 가르치는 일이어서 바로 나아갔다. 그 후 예조정랑(禮曹正郞)에 제수되었으나 더 이상 나아가지 않았다.
슬하에 3남 4녀를 두었다.
1687년(숙종 13) 안동 북후면(北後面) 도계서원(道溪書院)에 배향되었다.
유고로 산천을 유람하고 읊은 『동경일록(東京日錄)』이 전한다.
부친은 권심행(權審行)이다. 부인은 순흥안씨(順興安氏)이다.
타고난 성품이 후덕하였으며, 행동거지는 늘 무게가 있었고, 기쁨과 분노를 얼굴에 드러내는 법이 없었다. 또 공부를 시작한 후로 공부에 게으름을 피운 일이 없었다.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유일재(唯一齋) 김언기(金彦璣)‧월천(月川) 조목(趙穆)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이른 나이에 동당별시(東堂別試)를 한 번에 통과하였으나 남성시(南省試)에서 낙방하였다. 늦은 나이에 다시 도전하여 1601년(선조 34) 식년시 문과에 급제한 후, 관직은 공조좌랑(工曹佐郞)‧해미현감(海美縣監)‧형조좌랑(刑曹佐郞)‧호조좌랑(戶曹佐郞)‧예조좌랑(禮曹佐郞) 등을 역임하였다. 1609년(광해군 1) 수성찰방(輸城察訪)에 제수되었으나 조정이 어수선하자 나아가지 않았으나, 1616년(광해군 8) 동경교수(東京敎授)에 제수되자 후학들을 가르치는 일이어서 바로 나아갔다. 그 후 예조정랑(禮曹正郞)에 제수되었으나 더 이상 나아가지 않았다.
슬하에 3남 4녀를 두었다.
1687년(숙종 13) 안동 북후면(北後面) 도계서원(道溪書院)에 배향되었다.
유고로 산천을 유람하고 읊은 『동경일록(東京日錄)』이 전한다.
[참고문헌]
[집필자]
신상범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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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