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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순(柳永詢)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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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순지(詢之)
호(號)북천(北川)
생년1552(명종 7)
졸년?(미상)
시대조선중기
본관전주(全州)
활동분야문신 > 문신
유정(柳挺)

[상세내용]

유영순(柳永詢)
1552년(명종 7)∼미상.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순지(詢之), 호는 졸암(拙庵)북천(北川). 부사 유정(柳挺)의 아들이다.

1573년(선조 6) 사마시에 합격, 생원이 되고 1579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587년 동지사서장관(冬至使書狀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와 사성장령집의동부승지우승지를 역임하였다.

1595년에 황해도관찰사가 되었는데 가속(家屬)을 도내에 유치, 경거망동하고 또 수령을 통솔할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대간의 탄핵을 받아 파직당하였다.

이듬해 병조참지로 기용되어 해서(海西)‧관서(關西)사이의 관문인 평산산성(平山山城)의 중요성을 들어 그 수축을 청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왜란 중 부친과 형을 잃은 그는 김시헌(金時獻)송순(宋詢) 등과 함께 사사로이 군량‧무기 등을 준비하고 장정 700명을 모아 복수군(復讐軍)을 조직, 서울의 수성계획을 세우기도 하였다.

1598년에 다시 황해도관찰사, 1601년 성주목사, 이듬해 좌승지를 역임하고, 1604년에는 정평부사(定平府使)가 되어 학교를 세우고 스스로 학동들을 가르쳤다.

1606년에 경상도관찰사, 이듬해 동지중추부사한성부윤에 이어서 호조참판을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國朝榜目
燃藜室記述

[집필자]

문수홍(文守弘)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