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견(法堅)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BC95ACACFFFFB1552X0 |
호(號) | 기암(奇巖) |
생년 | 1552(명종 7) |
졸년 | 1634(인조 12) |
시대 | 조선중기 |
활동분야 | 종교 > 불교인 |
[상세내용]
법견(法堅)
1552년(명종 7)∼1634년(인조 12). 조선 중기의 고승. 호는 기암(奇巖). 자세한 생애는 전하지 않는다.
서산대사(西山大師)의 대표적인 제자 중 한 사람으로서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스승의 뜻을 받들어 승병을 모집하여 의승장(義僧將)으로 활약하였다.
1594년 입암산성(笠巖山城)을 축조할 때 감독하였으며, 성이 완성되자 총섭(摠攝)이 되어 산성의 수호를 맡는 산성수장(山城守將)이 되었다. 그는 주로 지리산과 금강산에서 수도하였다.
지리산에 있을 때는 선을 가르치면서 학도들을 제접하였는데, 그 해박함이 어떤 외전(外典)에도 통달하지 않음이 없었다.
또, 금강산에 머물렀을 때에는 많은 시를 남겼다.
83세의 나이로 입적하였다.
저서로는 문집인 『기암집』 3권 1책이 있다.
서산대사(西山大師)의 대표적인 제자 중 한 사람으로서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스승의 뜻을 받들어 승병을 모집하여 의승장(義僧將)으로 활약하였다.
1594년 입암산성(笠巖山城)을 축조할 때 감독하였으며, 성이 완성되자 총섭(摠攝)이 되어 산성의 수호를 맡는 산성수장(山城守將)이 되었다. 그는 주로 지리산과 금강산에서 수도하였다.
지리산에 있을 때는 선을 가르치면서 학도들을 제접하였는데, 그 해박함이 어떤 외전(外典)에도 통달하지 않음이 없었다.
또, 금강산에 머물렀을 때에는 많은 시를 남겼다.
83세의 나이로 입적하였다.
저서로는 문집인 『기암집』 3권 1책이 있다.
[참고문헌]
奇巖集(法堅)
李朝佛敎(高橋亨, 東京 寶文館, 1929)
李朝佛敎(高橋亨, 東京 寶文館, 1929)
[집필자]
이종익(李鍾益)
대표명 | 법견(法堅) |
법명 | 법견(法堅) |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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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