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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趙挺)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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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여호(汝豪)
호(號)한수(漢叟)
호(號)죽천(竹川)
생년1551(명종 6)
졸년1629(인조 7)
시대조선중기
본관양주(楊州)
활동분야문신 > 문신
조충수(趙忠秀)
저서『동사보유(東史補遺)』
공신호형난공신(亨難功臣)

[상세내용]

조정(趙挺)
1551년(명종 6)∼1629년(인조 7).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여호(汝豪), 호는 한수(漢叟)죽천(竹川).

조충수(趙忠秀)의 아들이다.

1582년(선조 15) 진사가 되고, 이듬해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사관(史官)으로 등용되었으며, 1586년 사정으로서 다시 문과중시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그뒤 예문관홍문관에 등용되고, 이어 수찬교리를 거쳐 정언이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보덕으로 세자를 호종(扈從)하였고, 그뒤 전적필선을 거쳐 회양부사광주목사(廣州牧使)남양부사안변부사로 나아갔다.

그뒤 호조판서대사간동부승지부제학동지중추부사대사성, 이조‧호조‧형조의 참판지의금부사대사헌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1601년 성절사(聖節使)명나라에 다녀와 한성판윤이 되고, 1609년 형조판서로 또다시 성절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어 우참찬형조판서우의정을 역임하였고, 형난공신(亨難功臣)2등에 책록되었으며, 한천군(漢川君)에 봉해졌다.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난 뒤 광해군을 가리켜 ‘전주(前主)’라 하였다 하여 대간의 탄핵을 받아 관작을 삭탈당하였고, 이어 광해군 때 공신이 되었다는 죄목이 가중되어 1628년 해남에 유배, 풍토병에 시달리다가 이듬해 죽었다.

1675년(숙종 1)신원되었고, 저서로는 『동사보유(東史補遺)』가 있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光海君日記
國朝榜目
楊州趙氏族譜

[집필자]

이재범(李在範)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