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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덕중(崔德重)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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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계임(季任)
생년1550(명종 5)
졸년?(미상)
시대조선중기
본관경주(慶州)
활동분야문신
최언룡(崔彦龍)
생부최언호(崔彦虎)

[상세내용]

최덕중(崔德重)
1550년(명종 5)~미상. 조선 전기 문신. 자는 계임(季任)이다.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출신지는 중화(中和)이다.

증조부는 최관(崔灌)이고, 조부는 최수충(崔秀忠)이다. 생부는 최언호(崔彦虎)이고, 부친은 최언룡(崔彦龍)이며, 모친은 이창신(李昌信)의 딸이다. 형은 최덕란(崔德蘭)‧최덕남(崔德男)이다.

1573년(선조 6) 식년시에 생원 2등 15위로 합격하였고, 1583년(선조 16) 정시에서 병과 7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교서관 정자(校書館正字)‧정주판관(定州判官) 등을 역임하였다.

1583년(선조 16) 임금이 평안도순무어사(平安道巡撫御史) 김수(金睟)에게 논(論)‧부(賦)의 제(題)를 보내 도내 유생을 모아 제술(製述)을 시험한 후에 답안을 봉인하여 올려 보내도록 하고, 이산해(李山海)‧정철(鄭澈)에게 명하여 석차를 정하게 하였다. 이때 생원(生員)으로 논(論) 부문에 참여하여 이중(二中)을 차지하고 전시에 직부의 자격을 받았다. 1593년(선조 26) 판관(判官)으로 임명되었는데, 술을 좋아하고 사람됨이 허술하여 모든 일을 하리(下吏)에게 맡겨버린다는 내용으로 사간원의 파직 요청이 있었으나, 임금이 쓰일 만한 인물이니 자급을 뛰어넘어 올린 것이고, 자주 체직하는 것은 좋지 못하다는 의견을 내려 이를 거절하였다. 다음 날 사간원에서 재차 최덕중(崔德重)의 파직을 청하자 임금이 문제가 많은 인물을 순서를 무시하고 파급승진을 추천한 이조의 관리를 추고하고 판관 임명을 개정하라 명하였다.

[참고문헌]

司馬榜目
國朝文科榜目
宣祖實錄

[집필자]

구은희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