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순일(申純一)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2E0C21CC77CB1550X0 |
자(字) | 순보(純甫) |
생년 | 1550(명종 5)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평산(平山) |
활동분야 | 모반자 |
부 | 신점(申點) |
[상세내용]
신순일(申純一)
1550년(명종 5)~미상. 조선 중기 모반자. 자는 순보(純甫)이다. 본관은 평산(平山)이다.
부친은 통훈대부(通訓大夫) 진주목사(晉州牧使) 신점(申點)이다. 부인은 이광현(李匡顯)의 딸이다.
1582년(선조 15) 식년시에서 생원 1등 3위로 합격하였다. 이후 현감(縣監) 등을 역임하였다.
봉산군수(鳳山郡守)로 재징 중이던 그의 아들 신율(申慄)이 봉산에서 옥사를 일으켰고, 그 결과 황혁(黃赫) 등이 억울한 죽음을 당하였다. 이후 1623년(인조 1)에 봉산에서 일어났던 옥사가 거짓으로 날조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그 또한 이 사건과 연루된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관직을 삭탈 당하고, 도성 밖으로 쫓겨난 상태였지만, 형이 가중되어 위리안치(圍籬安置)되었다. 아들은 신열(申悅)‧신율이다.
부친은 통훈대부(通訓大夫) 진주목사(晉州牧使) 신점(申點)이다. 부인은 이광현(李匡顯)의 딸이다.
1582년(선조 15) 식년시에서 생원 1등 3위로 합격하였다. 이후 현감(縣監) 등을 역임하였다.
봉산군수(鳳山郡守)로 재징 중이던 그의 아들 신율(申慄)이 봉산에서 옥사를 일으켰고, 그 결과 황혁(黃赫) 등이 억울한 죽음을 당하였다. 이후 1623년(인조 1)에 봉산에서 일어났던 옥사가 거짓으로 날조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그 또한 이 사건과 연루된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관직을 삭탈 당하고, 도성 밖으로 쫓겨난 상태였지만, 형이 가중되어 위리안치(圍籬安置)되었다. 아들은 신열(申悅)‧신율이다.
[참고문헌]
[집필자]
정병섭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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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