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록(洪宗祿)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D64DC885B85DB1546X0 |
자(字) | 연길(延吉) |
호(號) | 유촌(柳村) |
생년 | 1546(명종 1) |
졸년 | 1593(선조 26)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남양(南陽[土])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홍담(洪曇) |
조부 | 홍언광(洪彦光) |
외조부 | 조익수(曺益修) |

[관련정보]
[상세내용]
홍종록(洪宗祿)
1546년(명종 1)∼1593년(선조 26).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土]). 자는 연길(延吉), 호는 유촌(柳村).
홍언광(洪彦光)의 손자로, 좌참찬 홍담(洪曇)의 아들이며, 모친은 조익수(曺益修)의 딸이다.
1572년(선조 5) 생원으로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예문관검열이 되었다. 이어 삼사(三司)의 여러 관직을 거쳐, 1583년 병조정랑이 되었다.
1589년 정여립(鄭汝立)의 모반사건 때 여립의 조카 정집(鄭緝)의 문초에서 그의 이름도 거론되어 국문을 받고 구성으로 귀양갔다.
뒤에 풀려나와 제용감정(濟用監正)이 되었으며,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조정랑 신경진(辛慶晉)과 함께 도체찰사 유성룡(柳成龍)의 종사관으로 각 진영의 연락과 군수품공급의 일을 맡았다. 같은해 곽산에서 구성으로 들어가 그곳 관민의 협조를 얻어 많은 양곡을 정주‧가산 등지로 수운하여 군량공급에 크게 공헌하였다.
뒤에 황해도암행어사‧조도사(調度使)를 거쳐, 직제학에 이르렀다.
홍언광(洪彦光)의 손자로, 좌참찬 홍담(洪曇)의 아들이며, 모친은 조익수(曺益修)의 딸이다.
1572년(선조 5) 생원으로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예문관검열이 되었다. 이어 삼사(三司)의 여러 관직을 거쳐, 1583년 병조정랑이 되었다.
1589년 정여립(鄭汝立)의 모반사건 때 여립의 조카 정집(鄭緝)의 문초에서 그의 이름도 거론되어 국문을 받고 구성으로 귀양갔다.
뒤에 풀려나와 제용감정(濟用監正)이 되었으며,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조정랑 신경진(辛慶晉)과 함께 도체찰사 유성룡(柳成龍)의 종사관으로 각 진영의 연락과 군수품공급의 일을 맡았다. 같은해 곽산에서 구성으로 들어가 그곳 관민의 협조를 얻어 많은 양곡을 정주‧가산 등지로 수운하여 군량공급에 크게 공헌하였다.
뒤에 황해도암행어사‧조도사(調度使)를 거쳐, 직제학에 이르렀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國朝榜目
東洲集
西厓集
燃藜室記述
國朝榜目
東洲集
西厓集
燃藜室記述
[집필자]
김용국(金龍國)
명 : "종록(宗祿)"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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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