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국로(任國老)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84AD6DB85CB1537X0 |
자(字) | 태수(鮐叟) |
호(號) | 죽오(竹塢) |
호(號) | 운강(雲江) |
생년 | 1537(중종 32) |
졸년 | 1604(선조 37)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풍천(豊川)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임윤(任尹) |
조부 | 임명필(任明弼) |
외조부 | 권세걸(權世傑) |
[관련정보]
[상세내용]
임국로(任國老)
1537년(중종 32)∼1604년(선조 37).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태경(鮐卿) 또는 태수(鮐叟), 호는 죽오(竹塢)‧운강(雲江).
임명필(任明弼)의 손자로, 황주목사 임윤(任尹)의 아들이며, 모친은 권세걸(權世傑)의 딸이다.
1561년(명종 16) 사마시를 거쳐 이듬해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에 등용되었다가 봉상시주부‧호조좌랑‧정언‧지평 등을 역임하였다.
1582년(선조 15) 전라도관찰사로 나아갔고, 그뒤 중앙으로 돌아와 도승지‧대사헌‧대사성‧대제학 등을 지내고 1589년 이조참판으로 기축옥사에 연루, 파직되었다.
1591년 다시 대사성으로 기용되고 이듬해 임진왜란 때는 조도검찰사(調度檢察使)‧분호조참판을 지내면서 3년간 평안도에 머물렀으며, 1597년 정유재란 때에는 왕비를 호위하여 황해도에 피난하였다.
1599년 형조판서에 이어 다시 대사헌‧형조판서‧이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임명필(任明弼)의 손자로, 황주목사 임윤(任尹)의 아들이며, 모친은 권세걸(權世傑)의 딸이다.
1561년(명종 16) 사마시를 거쳐 이듬해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에 등용되었다가 봉상시주부‧호조좌랑‧정언‧지평 등을 역임하였다.
1582년(선조 15) 전라도관찰사로 나아갔고, 그뒤 중앙으로 돌아와 도승지‧대사헌‧대사성‧대제학 등을 지내고 1589년 이조참판으로 기축옥사에 연루, 파직되었다.
1591년 다시 대사성으로 기용되고 이듬해 임진왜란 때는 조도검찰사(調度檢察使)‧분호조참판을 지내면서 3년간 평안도에 머물렀으며, 1597년 정유재란 때에는 왕비를 호위하여 황해도에 피난하였다.
1599년 형조판서에 이어 다시 대사헌‧형조판서‧이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燃藜室記述
淸選考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燃藜室記述
淸選考
[집필자]
이정일(李貞一)
명 : "국로(國老)"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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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