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명(金大鳴)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E40B300BA85B1536X0 |
자(字) | 성원(聲遠) |
호(號) | 백암(白巖) |
생년 | 1536(중종 31) |
졸년 | 1593(선조 26)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울산(蔚山)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김추(金樞) |
[관련정보]
[상세내용]
김대명(金大鳴)
1536년(중종 31)∼1593년(선조 26).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울산(蔚山). 자는 성원(聲遠), 호는 백암(白巖). 찰방 김추(金樞)의 아들이다.
1558년(명종 13) 생원이 되고, 1570년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도사(都事)를 거쳐 풍기군수를 지냈다.
재능과 학식이 뛰어나 약관으로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 벼슬을 내놓고 향리에 돌아가서 날마다 시골 자제들과 더불어 강학하며 후진을 양성하였다.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에 있는 두류산 묵계동에서 병든 몸을 수양하던 중에, 초유사(招諭使) 김성일(金誠一)이 여러 사람들의 의견에 따라 도소모장(都召募將)을 삼으니, 고성 의병들과 함께 왜적을 토벌하여 공을 세웠다.
진주의 대각사(大覺祠)에 제향되었다.
1558년(명종 13) 생원이 되고, 1570년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도사(都事)를 거쳐 풍기군수를 지냈다.
재능과 학식이 뛰어나 약관으로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 벼슬을 내놓고 향리에 돌아가서 날마다 시골 자제들과 더불어 강학하며 후진을 양성하였다.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에 있는 두류산 묵계동에서 병든 몸을 수양하던 중에, 초유사(招諭使) 김성일(金誠一)이 여러 사람들의 의견에 따라 도소모장(都召募將)을 삼으니, 고성 의병들과 함께 왜적을 토벌하여 공을 세웠다.
진주의 대각사(大覺祠)에 제향되었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嶺南人物考
嶺南人物考
[이미지]
[집필자]
유병용(兪炳勇)
성명 : "김대명(金大鳴)"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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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