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린(李景麟)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74ACBDB9B0B1533X0 |
자(字) | 응성(應聖) |
생년 | 1533(중종 28)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전주(全州) |
활동분야 | 문신 |

부 | 이채(李彩) |

[관련정보]
[상세내용]
이경린(李景麟)
1533년(중종 28)~미상. 조선 전기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자는 응성(應聖)이다.
증조부는 윤산군(輪山君) 이탁(李濯)이고, 조부는 팔거수(八莒守) 이근(李根)이며, 부친은 청해수(淸海守) 이채(李彩)이다.
1561년(명종 16) 식년시에 생원 2등 3위로 입격하였고, 1567년(선조 즉위년) 식년시에서 병과 5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1593년(선조 26) 담양부사(潭陽府使)로서 임진왜란 중에 김덕령(金德齡)에게 종군을 권유하면서, 자신의 봉급을 털어서 전투에 필요한 제반 기구를 마련하는 등 의병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에는 여주목사(驪州牧使)에 임명되었다. 1606년(선조 39) 사헌부(司憲府)가 서북지방의 관기(官妓)를 사사로이 거느리고 있는 종친‧대신 등에 대한 파직 상소를 올렸는데, 이때 대상에 포함되어 파직되었다.
증조부는 윤산군(輪山君) 이탁(李濯)이고, 조부는 팔거수(八莒守) 이근(李根)이며, 부친은 청해수(淸海守) 이채(李彩)이다.
1561년(명종 16) 식년시에 생원 2등 3위로 입격하였고, 1567년(선조 즉위년) 식년시에서 병과 5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1593년(선조 26) 담양부사(潭陽府使)로서 임진왜란 중에 김덕령(金德齡)에게 종군을 권유하면서, 자신의 봉급을 털어서 전투에 필요한 제반 기구를 마련하는 등 의병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에는 여주목사(驪州牧使)에 임명되었다. 1606년(선조 39) 사헌부(司憲府)가 서북지방의 관기(官妓)를 사사로이 거느리고 있는 종친‧대신 등에 대한 파직 상소를 올렸는데, 이때 대상에 포함되어 파직되었다.
[참고문헌]
[집필자]
손용석
수정일 | 수정내역 |
---|---|
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