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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식(黃廷式)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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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경중(景中)
생년1529(중종 24)
졸년1592(선조 25)
시대조선전기
본관장수(長水)
활동분야문신 > 문신
황열(黃悅)
조부황기준(黃起峻)
증조부황섬(黃蟾)
외조부허용(許墉)

[상세내용]

황정식(黃廷式)
1529년(중종 24)∼1592년(선조 25).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장수(長水). 자는 경중(景中). 황섬(黃蟾)의 증손으로, 조부는 황기준(黃起峻)이고, 부친은 오위장(五衛將) 황열(黃悅)이며, 모친은 허용(許墉)의 딸이다. 형이 장계부원군(長溪府院君) 황정욱(黃廷彧)이다.

통사랑(通仕郞)으로 1561년(명종 16)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정언에 임명되었고, 병조정랑으로서 『명종실록』 편수에 참여하였다. 1569년(선조 2) 정언에 임명되어 용궁현감 이종(李悰)을 탄핵하였다가, 풍문에 의거한 탄핵이라 하여 한때 관직이 갈렸다가 다시 정언에 올랐다.

이후 1580년(선조 13) 삼척부사파주목사를 거쳐 1587년(선조 20) 우부승지에 임명되었으며, 곧 승지에 올랐다. 삼척부사로 있을 때 「태조대왕선묘기(太祖大王先墓記)」의 기록에 태백산 노동(蘆洞)목조(穆祖)의 고비(考妣) 능침이 있다는 설을 확인하기 위해, 탐색을 벌일 것을 주장하여 조사를 벌였으나, 확증을 얻는 데는 실패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그 해 5월 강원도로 의병을 모집하기 위해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호가(扈駕)하다가 평양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참고문헌]

明宗實錄
宣祖實錄
國朝榜目

[집필자]


수정일수정내역
2009-09-302009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