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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응린(蔡應麟)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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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군서(君瑞)
호(號)탄은(灘隱)
생년1529(중종 24)
졸년?(미상)
시대조선전기
본관인천(仁川)
활동분야문신 > 문신

[상세내용]

채응린(蔡應麟)
1529년(중종 24)∼미상,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군서(君瑞), 호는 송담(松潭)탄은(灘隱).

두문동(杜門洞) 72현의 한 분인 다의당(多義堂) 채귀하(蔡貴河)의 후예이다.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인인 계동(溪東) 전경창(全慶昌)에게서 학문을 전수받았다. 1555년(명종 10) 을묘(乙卯) 식년시(式年試) 생원(生員) 1등 4위로 합격하였다. 한강(寒岡) 정구(鄭逑)를 사우(師友)하여 학행(學行)과 문장(文章)이 일시(一時)에 추앙되었으며, 사림(士林)에서 그의 덕행을 숭모하여 유호서원(柳湖書院)에 배향하였다.

성품이 총영(聰穎)하고 기상이 빼어났다. 문예가 뛰어나 27세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했지만 을사사화(乙巳士禍)를 보고는 더 이상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수신(修身)에 힘썼고 경학과 성리학을 궁구하였으며, 강호(江湖)의 즐거움에 심취되어 금호강변(琴湖江邊)왕옥산(王屋山) 기슭에 소유정(小有亭)압구정(狎鷗亭)을 지어 명유(名儒)들과 시를 읊으며 속세를 벗어난 삶을 누렸다. 현재 소유정은 없어지고 압구정대구시(大邱市) 북구(北區) 검단동(檢丹洞)에 현존하고 있다. 압구정 기문(記文)은 그의 외증손(外曾孫) 이원정(李元禎)이 지었다.

[참고문헌]

CD-ROM 司馬榜目(韓國精神文化硏究院)
가사문학연구
朝鮮人名辭書

[집필자]

주정순
수정일수정내역
2008-12-312008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