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민(金齊閔)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E40C81CBBFCB1527X0 |
자(字) | 사효(士孝) |
호(號) | 오봉(鰲峰) |
시호(諡號) | 충강(忠剛) |
생년 | 1527(중종 22) |
졸년 | 1599(선조 32)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의성(義城)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김호(金灝) |
저서 | 『오봉유고』 |
[관련정보]
[상세내용]
김제민(金齊閔)
1527년(중종 22)∼1599년(선조 32).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사효(士孝), 호는 오봉(鰲峰).
부친은 김호(金灝)이며, 이항(李恒)의 문인이다.
1573년(선조 6)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형조의 낭관(郞官)을 거쳐 화순현감‧순창군수, 1586년 전라도사를 지낸 뒤 병으로 사퇴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향리에서 의병을 모집하여 대둔산 아래 주둔, 왜군을 맞아 싸웠고, 난이 끝난 뒤 학문연구에 전심하였다.
특히, 사마천(司馬遷)의 『사기』에 정통하였고, 많은 저서가 있었으나 전란으로 거의 타버렸다.
저서로는 『오봉유고』가 있다. 시호는 충강(忠剛)이며,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부친은 김호(金灝)이며, 이항(李恒)의 문인이다.
1573년(선조 6)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형조의 낭관(郞官)을 거쳐 화순현감‧순창군수, 1586년 전라도사를 지낸 뒤 병으로 사퇴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향리에서 의병을 모집하여 대둔산 아래 주둔, 왜군을 맞아 싸웠고, 난이 끝난 뒤 학문연구에 전심하였다.
특히, 사마천(司馬遷)의 『사기』에 정통하였고, 많은 저서가 있었으나 전란으로 거의 타버렸다.
저서로는 『오봉유고』가 있다. 시호는 충강(忠剛)이며,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國朝人物考
國朝人物考
[집필자]
김동수(金東洙)
명 : "제민(齊閔)"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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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