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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서(曺庶)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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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여중(汝衆)
시호(諡號)청간(淸澗)
생년?(미상)
졸년?(미상)
시대조선전기
본관창녕(昌寧)
활동분야문신/충신
조원유(曹元宥)

[상세내용]

조서(曺庶)
생졸년 미상. 조선 전기 문신‧충신. 자(字)는 여중(汝衆)이다.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조계룡(曺繼龍)과 평장사(平章事) 조자기(曺自奇)의 후손으로, 증조부는 소감(少監) 조준(曺俊)이고, 조부는 소감 조인취(曺仁取)이고, 부친은 판종부시사(判宗簿寺事) 조원유(曺元宥)이다.

야은(埜隱) 전록생(田祿生)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371년(공민왕 20) 신해방(辛亥榜) 동진사(同進士) 15위로 문과 급제한 후, 부윤(府尹) 등을 지냈다.

1394년(태조 3) 때 태조의 명으로 한리(韓理)‧정구(鄭矩) 등과 함께 법화경(法華經)을 금니(金泥)로 베껴 올렸다.

1398년(태조 7) 명나라에 사신을 가서 명나라 황제를 만나서 공물(供物)을 줄여줄 것을 요청하였다가 참소를 당해 수년 간 금치국(金齒國)에 유배되었다. 그 후 명황제는 강직한 충절에 탄복하여 사면시켜주면서 복숭아 씨앗에 금과 은으로 상감(象嵌)해서 만든 도핵배(桃核杯)를 하사품으로 내려주었다.

귀국 후 보문각직제학(寶文閣直提學) 등을 역임하였다.

시호는 청간(淸澗)이다.

문장에 뛰어나 『청구풍아(靑丘風雅)』‧『명신록(名臣錄)』에 이름이 올라 있으며, 전라북도 고창군(高敞郡) 고창읍(高敞邑) 월암리(月巖里)에 있는 정산사(鼎山祠)에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高麗列朝登科錄
惺所覆瓿藁

[집필자]

이은영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