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훈(韓訓)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D55CD6C8FFFFB1444X0 |
자(字) | 학고(學古) |
생년 | 1444(세종 26) |
졸년 | 1504(연산군 10)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청주(淸州)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한충인(韓忠仁) |
조부 | 한전(韓磌) |
증조부 | 한영정(韓永矴) |
외조부 | 김중엄(金仲淹) |
[관련정보]
[상세내용]
한훈(韓訓)
1444년(세종 26)(주1)
∼1504년(연산군 10).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학고(學古).
군사(郡事) 한영정(韓永矴)의 증손으로, 참의 한전(韓磌)의 손자이고, 수군절도사 한충인(韓忠仁)의 아들이며, 모친은 김중엄(金仲淹)의 딸이다. 도승지 신수근(愼守勤)의 처남이다.
1494년(성종 25)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1495년(연산군 1) 정언(正言)을 거쳐 수찬‧소격서영(昭格署令)을 역임하였다.
1497년 이조에서 그 한 사람만을 홍문관부교리로 의망(擬望)하자 헌납 손중돈(孫仲暾)이 의망의 부당성을 제기, 논박하여 죄주기를 청하였는데 신수근의 정병(政柄)에 힘입어 탄핵이 면해졌다.
1498년 김일손(金馹孫)과 함께 성종의 묘제의(廟制議)를 송나라 인종(仁宗)의 고사(故事)에 따라 백세불천지주(百世不遷之主)로 할 것을 기초(起草)한 사건에 연루되어 이성(利城)에 부처되었으나, 1501년 특방(特放)되었다.
1504년 김감(金勘)‧임사홍(任士洪)‧강혼(姜渾) 등이 이극균(李克均)‧이세좌(李世佐)‧윤필상(尹弼商)‧조지서(趙之瑞)‧이주(李胄)‧한훈‧홍식(洪湜)‧전향(田香)‧수근비(水斤非)의 죄명문(罪名文)을 진사(進辭)하면서 “한훈은 간원(諫員)으로서 임금을 업신여기는 마음을 품고 도리에 어긋난 말을 하니 형법에 따라 그 죄를 엄히 다스리고 부관(剖棺)하여 능지(陵遲)하고 그 가산을 적몰하고 그 집을 폐허로 하여 돌을 세워 죄악을 줄이고 후세로 하여금 경계하게 하여야 한다.”고 간언함에 따라 부관능지되었다.
생년 |
『선원록(璿源錄)』(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K2-1047]) 권20, [太宗大王類附錄](26a쪽)을 참고하여 생년을 추가. |
군사(郡事) 한영정(韓永矴)의 증손으로, 참의 한전(韓磌)의 손자이고, 수군절도사 한충인(韓忠仁)의 아들이며, 모친은 김중엄(金仲淹)의 딸이다. 도승지 신수근(愼守勤)의 처남이다.
1494년(성종 25)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1495년(연산군 1) 정언(正言)을 거쳐 수찬‧소격서영(昭格署令)을 역임하였다.
1497년 이조에서 그 한 사람만을 홍문관부교리로 의망(擬望)하자 헌납 손중돈(孫仲暾)이 의망의 부당성을 제기, 논박하여 죄주기를 청하였는데 신수근의 정병(政柄)에 힘입어 탄핵이 면해졌다.
1498년 김일손(金馹孫)과 함께 성종의 묘제의(廟制議)를 송나라 인종(仁宗)의 고사(故事)에 따라 백세불천지주(百世不遷之主)로 할 것을 기초(起草)한 사건에 연루되어 이성(利城)에 부처되었으나, 1501년 특방(特放)되었다.
1504년 김감(金勘)‧임사홍(任士洪)‧강혼(姜渾) 등이 이극균(李克均)‧이세좌(李世佐)‧윤필상(尹弼商)‧조지서(趙之瑞)‧이주(李胄)‧한훈‧홍식(洪湜)‧전향(田香)‧수근비(水斤非)의 죄명문(罪名文)을 진사(進辭)하면서 “한훈은 간원(諫員)으로서 임금을 업신여기는 마음을 품고 도리에 어긋난 말을 하니 형법에 따라 그 죄를 엄히 다스리고 부관(剖棺)하여 능지(陵遲)하고 그 가산을 적몰하고 그 집을 폐허로 하여 돌을 세워 죄악을 줄이고 후세로 하여금 경계하게 하여야 한다.”고 간언함에 따라 부관능지되었다.
[참고문헌]
燕山君日記
國朝榜目
大東韻府群玉
國朝榜目
大東韻府群玉
[집필자]
박천식(朴天植)
자 : "사고(師古)"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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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