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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빙(表憑)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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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경중(敬仲)
호(號)퇴우(退憂)
생년?(미상)
졸년1524(중종 19)
시대조선전기
본관신창(新昌)
활동분야문신 > 문신
표연말(表沿沫)

[상세내용]

표빙(表憑)
미상∼1524년(중종 19).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신창(新昌). 자는 경중(敬仲), 호는 퇴우(退憂). 직제학 표연말(表沿沫)의 아들이다.

1513년(중종 8) 식년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병조좌랑이 되었으나 상관과의 불화로 사직하였다.

1515년 김안로(金安老) 등과 사가독서(賜暇讀書) 한 뒤 정언, 이듬해 수찬에 이어 다시 정언이 되었다.

그해 의정부이조예조성균관을 통틀어 50명의 사유(師儒)를 간택하였는데 김안로김안국(金安國)과 더불어 이에 뽑혔으며, 노산군(魯山君: 단종)연산군의 후사를 세울 것을 진언하였다.

1517년 헌납이 되었고, 그뒤 교리를 거쳐 1520년에는 지평이 되었고, 이어서 장령홍문관 응교를 거쳐, 1523년 전한이 되어 응교를 겸하였다. 그해 검상에 임명되었으나 경연(經筵)의 3품관이 5품직에 임명 됨은 부당하다는 논란이 있었으며, 왜(倭)와의 싸움에서 패한 진상을 규명하기 위하여 패군지사추고경차관(敗軍之事推考敬差官)의 임무를 띠고 충청도에 다녀와 사인이 되었다.

1524년 다시 전한이 되었고, 이어 집의를 거쳐 직제학이 되었다.

[참고문헌]

中宗實錄
國朝榜目

[집필자]

문수홍(文守弘)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