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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복창(陳復昌)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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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수초(遂初)
생년?(미상)
졸년1563(명종 18)
시대조선전기
본관여양(驪陽)
활동분야문신 > 문신
진의손(陳義孫)
출생지풍덕(風德)

[상세내용]

진복창(陳復昌)
미상∼1563년(명종 18).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여양(驪陽). 자는 수초(遂初). 풍덕(風德) 출생. 현감 진의손(陳義孫)의 아들이며, 구수담(具壽聃)의 문인이다.

1535년(중종 30) 생원으로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고, 그뒤 정자전적장령을 거쳐 부제학부평부사 등을 지냈다. 척신 세도가였던 소윤 윤원형(尹元衡)의 심복이 되어 1545년(명종 즉위) 을사사화 때 대윤에 속한 사림의 숙청에 크게 활약, 많은 사람들이 해를 입자 사관(史官)들로부터 ‘독사(毒蛇)’로 기록되었다.

1550년에는 자기를 추천하여준 구수담까지 역적으로 몰아 사사(賜死)하게 하는 등 윤원형이 미워하는 사람이 있으면 앞장서 옥사를 일으켜 제거하자 ‘극적(極賊)’이라는 혹평을 들었다.

대사헌을 거쳐 1560년 공조참판에 올랐으나 윤원형으로부터 간교, 음험한 인물로 배척, 파직되어 삼수(三水)에 유배되었다.

1563년 죄가 가중, 위리안치(圍籬安置)되었다가 배소에서 죽었다. 교활한 성품과 어머니의 행실까지 방종하여 더욱 지탄을 받았으나 문장과 글씨에는 뛰어나 「역대가(歷代歌)」‧「만고가(萬古歌)」 등의 시가를 남겼다.

[참고문헌]

中宗實錄
明宗實錄
燃藜室記述

[집필자]

윤용혁(尹龍爀)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