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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심(正心)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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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異名)정심(淨心)
호(號)벽계(碧溪)
생년?(미상)
졸년?(미상)
시대조선전기
활동분야종교 > 불교인
출신지금산

[상세내용]

정심(正心)
생졸년 미상. 조선 초기의 선사(禪師). 정심(淨心)이라고도 한다. 성은 최씨(崔氏), 호는 벽계(碧溪). 금산 출신.

각운(覺雲)의 법을 잇고, 명나라에 가서 임제종(臨濟宗) 총통화상(摠統和尙)의 법인(法印)을 받아 귀국하였다.

그뒤 직지사에 머물렀는데, 연산군이 불교를 억압하여 절을 헐고 불상을 없애고 승려를 강제로 환속시켜 불교의 명맥이 거의 끊어지게 되자, 황학산 너머에 있는 물한리(勿罕里)로 가서 오두막을 짓고, 시봉하던 여신도를 부인처럼 꾸민 다음, 나무를 베어 팔아 연명하였다.

정진을 계속하면서 불법의 맥을 전할 제자를 기다린 것이다. 그때 지엄(智嚴)이 각고 끝에 그를 찾아와서 도를 가르쳐줄 것을 청하였다.

3년을 함께 살면서도 매일 나무를 베고 장작을 패며 시장에 팔러 다니는 일만 시킨 채 도를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는 지엄이 선지(禪旨)에 관하여 물어오면 항상 “오늘은 바빠서 일러줄 수 없다.”, 또는 “아직 멀었으니 정진하는 것을 보고 내일 일러준다.”고 하면서 일만 시켰다.

3년이 지난 뒤 지엄은 화가 나서 스승이 없는 사이에 사모에게 하직하고 떠났다. 그는 큰 바위 위에 서서, 떠나가는 지엄을 부른 뒤 주먹을 번쩍 들면서 “지엄아, 내 법 받아라.” 하고 외쳤다.

이때 지엄은 대오(大悟)하였다. 이 두 승려에 의하여 사태불교(沙汰佛敎)속에서도 우리나라 불교 선종(禪宗)의 법맥은 전승되었다. 그밖의 행적은 자세히 전하여지지 않으며, 그의 교맥(敎脈)은 법준(法俊)에게 이어졌다.

[참고문헌]

朝鮮佛敎通史(李能和, 新文館, 1918)
朝鮮禪敎史(忽滑谷快天, 鄭湖鏡譯, 寶蓮閣, 1978)

[집필자]

김위석(金渭錫)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