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갑손(鄭甲孫)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815AC11C190D1451X0 |
자(字) | 인중(仁仲) |
시호(諡號) | 정절(貞節) |
생년 | 1396(태조 5) |
졸년 | 1451(문종 1)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동래(東萊)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정흠지(鄭欽之) |
[상세내용]
정갑손(鄭甲孫)
1396년(태조 5)∼1451년(문종 1).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인중(仁仲).
중추원사 정흠지(鄭欽之)의 아들이며, 문종의 후궁 소용 정씨(昭容鄭氏)의 아버지이다.
1417년(태종 17) 식년문과에 동진사로 급제한 뒤 부정자‧감찰‧병조좌랑‧헌납‧지평 등을 두루 거쳐 지승문원사가 되었다.
1435년(세종 17)에 강직한 성격을 인정받아 좌승지로 발탁되고 지형조사(知刑曹事)‧예조참판을 거쳐 1438년 전라도관찰사로 나갔다.
1441년 대사헌으로 이도(吏道)를 바로잡아 더욱 세종의 신임을 받았다.
그뒤 경기도와 함경도의 관찰사, 중추원사‧판한성부사 등을 역임한 뒤 우참찬을 거쳐 1450년(문종 즉위) 좌참찬이 되어, 판이조사(判吏曹事)를 겸하였다.
그는 청렴하기로 널리 알려져 중종 때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시호는 정절(貞節)이다.
중추원사 정흠지(鄭欽之)의 아들이며, 문종의 후궁 소용 정씨(昭容鄭氏)의 아버지이다.
1417년(태종 17) 식년문과에 동진사로 급제한 뒤 부정자‧감찰‧병조좌랑‧헌납‧지평 등을 두루 거쳐 지승문원사가 되었다.
1435년(세종 17)에 강직한 성격을 인정받아 좌승지로 발탁되고 지형조사(知刑曹事)‧예조참판을 거쳐 1438년 전라도관찰사로 나갔다.
1441년 대사헌으로 이도(吏道)를 바로잡아 더욱 세종의 신임을 받았다.
그뒤 경기도와 함경도의 관찰사, 중추원사‧판한성부사 등을 역임한 뒤 우참찬을 거쳐 1450년(문종 즉위) 좌참찬이 되어, 판이조사(判吏曹事)를 겸하였다.
그는 청렴하기로 널리 알려져 중종 때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시호는 정절(貞節)이다.
[참고문헌]
世宗實錄
文宗實錄
國朝榜目
文宗實錄
國朝榜目
[집필자]
이재범(李在範)
명 : "갑손(甲孫)"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
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2010-06-12 | 세종실록 51권, 1431년3월 13일자 기사 “권전‧정갑손‧홍심의 딸을 동궁에 바치다”를 참고하여 “세종의 후궁”을 “문종의 후궁”으로 고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