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곤(尹坤)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C724ACE4FFFFD1421X0 |
시호(諡號) | 소정(昭靖) |
생년 | ?(미상) |
졸년 | 1421(세종 3)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파평(坡平)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윤승순(尹承順) |
공신호 | 익대좌명공신(翊戴佐命功臣) |
[관련정보]
[상세내용]
윤곤(尹坤)
미상∼1421년(세종 3).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판개성부사 윤승순(尹承順)의 아들이다. 젊어서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아우 윤향(尹珦)과 함께 문학으로 이름이 높았다.
1400년(정종 2) 이방원(李芳遠: 뒤의 태종)이 그의 동복형인 이방간(芳幹)이 일으킨 난을 평정하고 왕위에 오르는 데 협력한 공으로, 1401년(태종 1) 익대좌명공신(翊戴佐命功臣) 3등에 책록되고, 우군동지총제(右軍同知摠制)로 파평군(坡平君)에 봉작되었다.
1406년 좌군도총제(左軍都摠制)로 있을 때 다른 사건에 연루, 파직되어 파평현에 유배되었다가, 1418년 세종이 즉위하자 평안도관찰사로 기용되었다. 그가 학덕이 높은 것을 알고 있는 세종은 침전에서 환송연을 베풀어주는 등 크게 총애하였다.
이듬해 9월에 이조판서로 승진되었다. 그의 파격적인 출세는 평안도관찰사로 있을 때에 기악(妓樂)을 폐지하여 풍속을 바로잡는 등 많은 치적을 쌓았기 때문이다.
그뒤 우참찬까지 지냈다. 성질이 관후(寬厚)하고 풍채가 매우 좋아, 복옹(福翁)이라는 별칭을 받았다. 시호는 소정(昭靖)이다.
판개성부사 윤승순(尹承順)의 아들이다. 젊어서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아우 윤향(尹珦)과 함께 문학으로 이름이 높았다.
1400년(정종 2) 이방원(李芳遠: 뒤의 태종)이 그의 동복형인 이방간(芳幹)이 일으킨 난을 평정하고 왕위에 오르는 데 협력한 공으로, 1401년(태종 1) 익대좌명공신(翊戴佐命功臣) 3등에 책록되고, 우군동지총제(右軍同知摠制)로 파평군(坡平君)에 봉작되었다.
1406년 좌군도총제(左軍都摠制)로 있을 때 다른 사건에 연루, 파직되어 파평현에 유배되었다가, 1418년 세종이 즉위하자 평안도관찰사로 기용되었다. 그가 학덕이 높은 것을 알고 있는 세종은 침전에서 환송연을 베풀어주는 등 크게 총애하였다.
이듬해 9월에 이조판서로 승진되었다. 그의 파격적인 출세는 평안도관찰사로 있을 때에 기악(妓樂)을 폐지하여 풍속을 바로잡는 등 많은 치적을 쌓았기 때문이다.
그뒤 우참찬까지 지냈다. 성질이 관후(寬厚)하고 풍채가 매우 좋아, 복옹(福翁)이라는 별칭을 받았다. 시호는 소정(昭靖)이다.
[참고문헌]
太祖實錄
定宗實錄
世宗實錄
國朝人物考
定宗實錄
世宗實錄
國朝人物考
[집필자]
이재범(李在範)
대표명 | 윤곤(尹坤) |
명 | 곤(坤) |
성명 | 윤곤(尹坤) |
시호 | 소정(昭靖), 소정공(昭靖公), 소정공곤(昭靖公坤) |
명 : "곤(坤)"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
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