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염(柳琰)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C720C5FCFFFFU9999X0 |
자(字) | 주인(州人) |
호(號) | 묵재(黙齋) |
시호(諡號) | 문간(文簡) |
생년 | ?(미상)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진주(晉州[土])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유혜손(柳惠蓀) |
조부 | 유인비(柳仁庇) |
출신지 | 진주 |
[상세내용]
유염(柳琰)
생졸년 미상. 고려말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土]). 자는 주인(州人), 호는 묵재(黙齋).
고려 밀직부사 유인비(柳仁庇)의 손자이며, 평리(評理) 유혜손(柳惠蓀)의 아들이다.
진주 출신으로 고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하고, 우왕 때에 성균관대사성을 역임하였다.
공양왕 즉위 후 이림(李琳)의 손녀사위라는 이유로 멀리 유배되었다가 1391년(공양왕 3)에 사면되었다. 조선 개국 후에는 1402년(태종 2)에 전라도관찰출척사(全羅道觀察黜陟使)를 거쳐 1417년에 판한성부사를 지냈으며, 그뒤에는 이조판서‧대제학 등을 역임하면서 관료생활이 깨끗하다고 하여 세종 때에는 청백리로 녹선되었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고려 밀직부사 유인비(柳仁庇)의 손자이며, 평리(評理) 유혜손(柳惠蓀)의 아들이다.
진주 출신으로 고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하고, 우왕 때에 성균관대사성을 역임하였다.
공양왕 즉위 후 이림(李琳)의 손녀사위라는 이유로 멀리 유배되었다가 1391년(공양왕 3)에 사면되었다. 조선 개국 후에는 1402년(태종 2)에 전라도관찰출척사(全羅道觀察黜陟使)를 거쳐 1417년에 판한성부사를 지냈으며, 그뒤에는 이조판서‧대제학 등을 역임하면서 관료생활이 깨끗하다고 하여 세종 때에는 청백리로 녹선되었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太宗實錄
號譜
淸選考
太宗實錄
號譜
淸選考
[집필자]
박정자(朴定子)
명 : "염(琰)"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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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