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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安省)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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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異名)안소목(安少目)
자(字)습지(習之)
자(字)일삼(日三)
호(號)설천(雪泉)
호(號)천곡(泉谷)
시호(諡號)사간(思簡)
생년1344(충혜왕 5)
졸년1421(세종 3)
시대조선전기
본관광주(廣州)
활동분야문신 > 문신

[상세내용]

안성(安省)
1344년(충혜왕 5)∼1421년(세종 3). 고려조선초의 문신. 본관은 광주(廣州). 초명은 안소목(安少目). 자는 습지(習之)일삼(日三), 호는 설천(雪泉)천곡(泉谷)(주1)
자 호 본관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장서각 B9C 2] 1권 "安省.. 字日三 號雪泉又號泉谷 廣州人 .." 참고
.

고려 우왕초 생원에 합격하고, 1380년(우왕 6) 문과에 급제하여 보문각직학사(寶文閣直學士)를 거쳐 상주판관이 되어 청렴한 이름을 떨쳤다.

조선 개국 후, 1393년(태조 2) 청백리에 뽑혀 송경유후(松京留後)에 임명되었을 때, ‘자신이 대대로 고려에 벼슬한 가문으로서 어찌 다른 사람의 신하가 되어 송경에 가서 조상의 영혼을 대하랴’ 하고 궁전 기둥에 머리를 부딪치며 통곡하니, 태조가 ‘이 사람을 죽이면 후세에 충성하는 선비가 없어진다’ 하고 죽이려는 좌우를 제지하고 그를 급히 붙들어 내보냈다 한다.

1396년 개국공신 정희계(鄭熙啓)의 시호를 야박하게 지었다고 태조가 노엽게 여겨 축산(丑山)에 유배되고, 1400년(정종 2) 중승(中丞)을 거쳐 지보주사(知甫州事)가 되었다.

1411년(태종 11) 참지의정부사(參知議政府事)정조사(正朝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와 강원도도관찰사가 되었으며, 벼슬이 참찬에 이르고 평양백(平壤伯)에 봉해졌다.

뒤에 장수용암서원(龍巖書院)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사간(思簡)이다.(주2)
시호
세종실록 12권, 1421년 7월 16일 기사, "전 개성 유후사 유후(留後) 안성(安省)이 졸하니, ... 시호를 사간(思簡)이라고 내렸으니, 그 전과실을 뉘우치는 것을 사(思)라 하고, 평이(平易)하여 남을 헐뜯지 않은 것을 간(簡)이라 하였다." 참고

[참고문헌]

太祖實錄
定宗實錄
太宗實錄
世宗實錄
國朝人物考
紀年便攷

[집필자]

박천규(朴天圭)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2012-01-20참고문헌에 紀年便攷를 추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