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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온(沈溫)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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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중옥(仲玉)
시호(諡號)안효(安孝)
생년?(미상)
졸년1418(세종 즉위)
시대조선전기
본관청송(靑松)
활동분야문신 > 문신
심덕부(沈德符)

[상세내용]

심온(沈溫)
미상∼1418년(세종 즉위).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중옥(仲玉). 세종의 장인이며, 개국공신 청성백(靑城伯) 심덕부(沈德符)의 아들이다.

고려 때 문과에 급제하여 고려조정에서 벼슬을 하다가 아버지와 함께 조선왕조 창업에 참여하여 간관의 직무를 맡아보았다.

1408년(태종 8) 그의 딸이 충녕군(忠寧君)의 비가 되면서 왕실과 인척관계를 맺고, 벼슬도 높아졌다.

1411년 풍해도관찰사가 되어 백성을 침탈하고 병기관리에 소홀한 수군첨절제사 박영우(朴英祐)를 파직시키고, 이어서 대사헌이 되어서는 관기확립에 힘썼다.

1414년 변정도감제조(辨正都監提調)형조판서를 역임하면서 고려 후기에 권세가들에 의하여 천민으로 바뀐 양민들의 신분정리사업에 이바지하였고, 이어서 호조판서좌군총제판한성부사를 역임하였는데, 세자인 양녕대군(讓寧大君)의 행동에 연루되어 대간에 의해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그뒤 이조판서공조판서를 역임하고, 양녕대군을 대신하여 충녕대군이 세자로 책봉되고, 이어서 세종으로 즉위하자 국구(國舅)로서 영의정이 되어 정치의 실권을 가까이하기에 이르렀다.

1418년(세종 즉위)에는 사은사(謝恩使)로서 명나라에 가게 되었는데, 이때에 그의 동생 심정(沈泟)병조판서 박습(朴習)과 같이 상왕인 태종의 병권장악을 비난한 것이 화근이 되어, 이듬해 귀국 도중에 의주에서 체포되어 수원으로 압송, 사사되었다.

이 사건은 그가 국구로서 세력이 커짐을 염려한 태종좌의정 박은(朴訔)의 무고로 밝혀져, 뒤에 세종은 관직을 복위시키고, 안효(安孝)라는 시호를 내렸다. 죽음에 임하여 유언으로 박씨와 혼인하지 말도록 당부하니, 오랫동안 지켜졌다.

[참고문헌]

太宗實錄
世宗實錄
國朝名臣錄

[집필자]

최완기(崔完基)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