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은(郭垠)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ACFDC740FFFFU9999X0 |
자(字) | 안부(岸夫) |
호(號) | 용촌(龍村) |
생년 | ?(미상)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선산(善山)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곽기(郭琦) |
[관련정보]
[상세내용]
곽은(郭垠)
생졸년 미상.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안부(岸夫).
부친은 생원 곽기(郭琦)이다.
1472년(성종 3) 춘장문과(春場文科)에 갑과로 급제하여 검교(檢校)로 등용되었으며, 그해 정조사(正朝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81년에 지평이 된 뒤 헌납‧전적‧장령을 거쳐 1484년에는 전설사수(典設司守)가 되었다.
그뒤 왕의 특명으로 담양부사로 나가 부역을 경감하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조정에서 그의 치적을 높이 평가하여 승지로 승진시켰으나 부임 도중에 죽었다. 그가 죽자 부민들은 크게 비통해했으며 오래도록 기신제(忌辰祭)를 지냈다.
절의에 바르기로 유명한 남효온(南孝溫)도 그 죽음을 슬퍼하는 글을 지어 후세에 남겼고, 이이(李珥)도 그의 자손을 현인의 후예라 하여 등용할 것을 주청하였다.
부친은 생원 곽기(郭琦)이다.
1472년(성종 3) 춘장문과(春場文科)에 갑과로 급제하여 검교(檢校)로 등용되었으며, 그해 정조사(正朝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81년에 지평이 된 뒤 헌납‧전적‧장령을 거쳐 1484년에는 전설사수(典設司守)가 되었다.
그뒤 왕의 특명으로 담양부사로 나가 부역을 경감하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조정에서 그의 치적을 높이 평가하여 승지로 승진시켰으나 부임 도중에 죽었다. 그가 죽자 부민들은 크게 비통해했으며 오래도록 기신제(忌辰祭)를 지냈다.
절의에 바르기로 유명한 남효온(南孝溫)도 그 죽음을 슬퍼하는 글을 지어 후세에 남겼고, 이이(李珥)도 그의 자손을 현인의 후예라 하여 등용할 것을 주청하였다.
[참고문헌]
成宗實錄
國朝人物考
國朝人物考
[집필자]
이재범(李在範)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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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