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백진(康伯珍)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C15BC31C9C4D1504X0 |
자(字) | 자온(子韞) |
호(號) | 무명재(無名齋) |
생년 | ?(미상) |
졸년 | 1504(연산군 10)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신천(信川)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강척(康惕) |
처부 | 김종직(金宗直) |
[관련정보]
[상세내용]
강백진(康伯珍)
미상∼1504년(연산군 10).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신천(信川). 자는 자온(子韞), 호는 무명재(無名齋).
부친은 강척(康惕)이고, 강중진(康仲珍)은 그의 아우이다. 김종직(金宗直)의 사위이자 문인이다.
1472년(성종 3) 생원시에 합격하고, 1477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1490년 사헌부지평이 되었다가 같은 해 10월에 함안군수가 되었으며, 재직기간 선정을 베풀어 1493년 경상도관찰사 이극균(李克均)으로부터 선정사실에 대한 장계(狀啓)로 가자(加資)되기도 하였다. 이듬해 다시 내직으로 들어와 사헌부장령‧사간원사간을 지냈다.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 때 김일손(金馹孫)‧권오복(權五福)‧권경유(權景裕) 등이 대역죄로 능지처사를 당할 때 장(杖) 80에 정주로 귀양가서 봉수(烽燧)의 야역(夜役)을 하였다.
1504년에 무오수죄(戊午受罪)로 외방부처된 사람들의 처리안이 나와 그는 결국 능지처참되고, 아들과 형제들도 결장(決杖)에다 외방으로 축출당하였다.
1506년(중종 1)에 대사간에 추증되었다.
부친은 강척(康惕)이고, 강중진(康仲珍)은 그의 아우이다. 김종직(金宗直)의 사위이자 문인이다.
1472년(성종 3) 생원시에 합격하고, 1477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1490년 사헌부지평이 되었다가 같은 해 10월에 함안군수가 되었으며, 재직기간 선정을 베풀어 1493년 경상도관찰사 이극균(李克均)으로부터 선정사실에 대한 장계(狀啓)로 가자(加資)되기도 하였다. 이듬해 다시 내직으로 들어와 사헌부장령‧사간원사간을 지냈다.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 때 김일손(金馹孫)‧권오복(權五福)‧권경유(權景裕) 등이 대역죄로 능지처사를 당할 때 장(杖) 80에 정주로 귀양가서 봉수(烽燧)의 야역(夜役)을 하였다.
1504년에 무오수죄(戊午受罪)로 외방부처된 사람들의 처리안이 나와 그는 결국 능지처참되고, 아들과 형제들도 결장(決杖)에다 외방으로 축출당하였다.
1506년(중종 1)에 대사간에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成宗實錄
燕山君日記
中宗實錄
燃藜室記述
燕山君日記
中宗實錄
燃藜室記述
[집필자]
유영박(柳永博)
명 : "백진(伯珍)"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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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