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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익(曺光益)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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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가회(可晦)
호(號)취원당(聚遠堂)
호(號)죽와(竹窩)
생년1537(중종 32)
졸년1580(선조 13)
시대조선전기
본관창녕(昌寧)
활동분야문신 > 문신
조윤신(曺允愼)
저서『취원문집』

[상세내용]

조광익(曺光益)
1537년(중종 32)∼1580년(선조 13).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가회(可晦), 호는 취원당(聚遠堂) 또는 죽와(竹窩).

부친은 조윤신(曺允愼)이며, 모친은 이조판서를 지낸 장말손(張末孫)의 손녀이다.

이황(李滉)의 문인이며, 성리학(性理學)을 깊이 연구하였다.

1558년(명종 13) 생원‧진사 양시에 합격하였고, 1564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1569년(선조 2) 형조좌랑에 이어 감찰을 지내고 1576년 중시(重試)에 장원급제, 의금부도사에 이르렀다.

1578년 강동(江東)으로 좌천된 아우 조호익(曺好益)을 만나려고 평안도도사의 직책을 얻어 내려갔다가 그곳에서 죽었다.

선조는 그 우애를 가상히 여겨 정문을 내려 표창하고, 『삼강행실록』에 수록하게 하였다. 오봉서원(五峰書院)청효사(淸孝祠)에 봉안되었다.

저서로는 『취원문집』이 있다.

[참고문헌]

國朝榜目
聚遠文集

[집필자]

조기대(趙基大)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