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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점(申點)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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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성여(聖與)
시호(諡號)충경(忠景)
생년1530(중종 25)
졸년?(미상)
시대조선전기
본관평산(平山)
활동분야문신 > 문신
신순미(申順美)
생부신정미(申廷美)
외조부이장배(李長培)
공신호선무공신(宣武功臣)

[상세내용]

신점(申點)
1530년(중종 25)∼미상.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성여(聖與).

부친은 신정미(申廷美)이며, 모친은 이장배(李長培)의 딸이다. 큰아버지 신순미(申順美)에게 입양되었다.

1564년(명종 19)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같은해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 문한관(文翰官)을 거쳐, 1569년(선조 2) 정언이 된 이래, 장령수찬사간교리부교리부응교 등을 번갈아 역임하면서 경연관(經筵官)으로 입시하여 기묘사화 때에 피화된 인물들의 신원(伸寃)에 노력하였다.

1578년 집의가 되어 야인의 침입에 대비한 국방강화를 건의하는 등 대간으로서 많은 활동을 전개하였다.

1584년 충청도경기도 감목관(監牧官)이 되어 마정(馬政)을 순시하고 수령을 규찰하였다.

이때 전라도 전세선(田稅船)이 안흥량(安興梁)에서 파선되는 일이 빈번하여 세곡과 인명손실이 막대함을 알고, 이의 시정을 위하여 항로의 굴찰과 주위에 창고를 설치할 것을 건의하여 왕의 허락을 받았다.

그뒤 의주목사강원감사를 거쳐, 1592년 사은사(謝恩使)명나라에 파견되어 연경(燕京)에 체류하다 임진왜란의 발발을 알게 되었다. 이에 병부상서 석성(石星)의 도움을 받아 병부와 예부에 계속 상주(上奏)하여 위급함을 호소하였는데, 그 결과 부총병(副摠兵) 조승훈(祖承訓), 유격장(遊擊將) 사유(史儒) 등에 의한 요동병(遼東兵) 3,000명의 파견이 있게 되었다.

곧 귀환하여 승지부호군동지중추부사병조참의호조참의형조참판형조판서지중추부사도총관동지의금부사 등의 요직을 역임하면서 전란의 타개에 진력하였다.

1597년 강릉부사로 혜정(惠政)을 베풀다가 순검사(巡檢使)가 되어 축성을 담당하였고, 이어서 판의금부사가 되었다.

1604년 선무공신(宣武功臣) 2등에 녹훈되고, 평성부원군(平星府院君)에 봉해졌다. 그는 평소 성질이 탐비(貪鄙)하여 취렴(聚斂)에 힘썼다는 사신(史臣)의 비평을 받았으나, 예제(禮制)에 밝아 조선 전기 이래 복상시 때 입(笠)에 대한 정해진 제도가 없었는데, 그가 경연에서 백포립(白布笠)을 쓸 것을 건의하여 그뒤 준용되었다고 한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燃藜室記述
國朝榜目
大東野乘
號譜

[집필자]

장동익(張東翼)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