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사안(具思顔)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D6CC0ACC548B1523X0 |
자(字) | 중우(仲愚) |
생년 | 1523(중종 18) |
졸년 | 1562(명종 17)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능성(綾城)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구순(具淳) |
증조부 | 구수영(具壽永) |
처 | 효순공주(孝順公主) |
공신호 | 위사원종공신(衛社原從功臣) |
[상세내용]
구사안(具思顔)
1523년(중종 18)∼1562년(명종 17). 조선 중기의 문신. 중종의 사위. 본관은 능성(綾城). 자는 중우(仲愚). 증조부가 정국공신 구수영(具壽永)이며, 부친은 구순(具淳)이다.
1533년 중종의 셋째딸 효순공주(孝順公主)를 맞아 능원위(綾原尉)로 피봉되었으나, 얼마 후 공주가 난산으로 죽자 국법을 어기고 다시 결혼하였기 때문에 은권(恩眷)을 빼앗겼다.
그뒤 1546년(명종 1) 위사원종공신(衛社原從功臣) 1등으로 증조부의 훈봉을 이어받고 능원군(綾原君)이 되었다.
문장에 뛰어났으며, 서적구입에는 재물을 아끼지 않는다고 할 만큼 문인으로 자처하였다. 경사를 두루 섭렵하였으며, 금대봉(金臺峰) 아래에 별장을 짓고 자주 유연(遊宴)을 베풀며 즐겼다.
1548년 평소 친교가 두터웠던 윤결(尹潔)과 그 아우 윤준(尹浚)이 을사사화의 시말을 시정기(時政記)에 기록하였다가 처형당한 사관 안명세(安名世)와 내통하였다고 밀계하여 마침내 이들을 죽게 하였다.
1533년 중종의 셋째딸 효순공주(孝順公主)를 맞아 능원위(綾原尉)로 피봉되었으나, 얼마 후 공주가 난산으로 죽자 국법을 어기고 다시 결혼하였기 때문에 은권(恩眷)을 빼앗겼다.
그뒤 1546년(명종 1) 위사원종공신(衛社原從功臣) 1등으로 증조부의 훈봉을 이어받고 능원군(綾原君)이 되었다.
문장에 뛰어났으며, 서적구입에는 재물을 아끼지 않는다고 할 만큼 문인으로 자처하였다. 경사를 두루 섭렵하였으며, 금대봉(金臺峰) 아래에 별장을 짓고 자주 유연(遊宴)을 베풀며 즐겼다.
1548년 평소 친교가 두터웠던 윤결(尹潔)과 그 아우 윤준(尹浚)이 을사사화의 시말을 시정기(時政記)에 기록하였다가 처형당한 사관 안명세(安名世)와 내통하였다고 밀계하여 마침내 이들을 죽게 하였다.
[참고문헌]
明宗實錄
國朝人物考
朝野輯要
頤庵遺稿(宋寅)
國朝人物考
朝野輯要
頤庵遺稿(宋寅)
[집필자]
김동수(金東洙)
명 : "사안(思顔)"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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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