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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축(安舳)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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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해빈(海賓)
호(號)둔암(鈍庵)
생년1500(연산군 6)
졸년1572(선조 5)
시대조선전기
본관죽산(竹山[新])
활동분야문신
안수륜(安秀崙)

[상세내용]

안축(安舳)
1500년(연산군 6) 12월 2일~1572년(선조 5) 1월 11일. 조선 전기 문신. 자는 해빈(海賓)이고, 호는 둔암(鈍庵)이다. 본관은 죽산(竹山[新])이고, 전라도 보성(寶城) 출신이다.

증조부는 안민(安民)이고, 조부는 현감(縣監) 안범(安範)이며, 부친은 의정부사록(議政府司錄) 안수륜(安秀崙)이다. 외조부는 거창신씨(居昌愼氏) 군수 신난동(愼蘭同)이고, 처부는 도강김씨(道康金氏) 생원(生員) 김약회(金若晦)이다.

1531년(중종 26) 신묘 식년시에 생원‧진사로 합격하였고, 1542년(중종 37) 임인 정시(庭試) 문과에 급제하였다.

병조좌랑(曹曹佐郞), 호조좌랑(戶曹佐郞) 및 1547년(명종 2)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 1548년(명종 3)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을 거쳐 영광군수(靈光郡守)를 역임하였고, 1553년(명종 8) 나주목사(羅州牧使)를 지냈으며, 1557년(명종 12) 남원도호부사(南原都護府使) 겸 춘추관편수관(春秋館編修官)을 끝으로 전남 보성군 보성읍 우산리 솔뫼[松山]로 물러나와 빙호정사(氷壺精舍)를 축조하고 배회정(徘徊亭)을 지어 유유자적하게 여생을 보내다 73세로 세상을 마쳤다.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 석천(石川) 임억령(林億齡)과 함께 세상을 초탈하여 한적하게 노닐었다하여 사람들에 의해 ‘호남삼고(湖南三高)’라 일컬어졌다.

아들로 안중관(安重寬), 안중홍(安重洪), 안중돈(安重敦)이 있고, 사위는 광주이씨 이유창(李惟昌)이다.

묘소는 전남 보성군 노동면 감정리 감정동이 있고, 화암재(華巖齋)에서 후손들에 의해 매년 제향되고 있다.

[참고문헌]


[집필자]

안재중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