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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무일(蔡無逸)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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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거경(居敬)
호(號)일계(逸溪)
생년1496(연산군 2)
졸년1556(명종 11)
시대조선전기
본관인천(仁川)
활동분야문신 > 문신
채윤권(蔡胤權)
조부채수(蔡壽)
출생지함창
공신호정국공신(靖國功臣)

[상세내용]

채무일(蔡無逸)
1496년(연산군 2)∼1556년(명종 11). 조선 중기의 문신‧문인‧화가.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거경(居敬), 호는 일계(逸溪). 함창 출생. 정국공신(靖國功臣) 지중추부사 채수(蔡壽)의 손자로, 전생참봉(典牲參奉) 채윤권(蔡胤權)의 아들이다.

1522년(중종 17) 생원이 되었다. 그 당시 고모부인 김안로(金安老)와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김안로는 그가 대과에 급제하면 자기에게 방해될 것을 두려워하여 대간들을 사주하여 그를 진우(陳宇)의 일당으로 몰아서 1534년 남해로 귀양을 가게 하였다.

김안로가 실각한 뒤인 1537년 귀양에서 풀려나, 1540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정자가 되었다. 정언좌랑을 지냈다.

1544년 부안현감으로 있을 때 중종이 사망하였는데, 그림 재주에 뛰어난 그가 선화(善畵)로 천거되어 왕명을 받고 선왕인 중종의 화상을 그려 바쳤다.

이로써 이조정랑에서 헌납이 되었고, 왕명을 받아 간의(簡儀)를 수리하였다. 이에 사람들이 그 기술이 너무나 뛰어나므로 탄복하였다. 경사(經史)와 역(易)에 정통할 뿐만 아니라 서화‧음률‧의학‧복서(卜筮)에도 뛰어나 명성이 높았다.

특히 중종대에 선비로서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매우 많았는데, 그 중에서도 풀벌레그림에는 가장 저명하였다. 벼슬이 한성서윤에 이르렀다. 함창임호서원(臨湖書院)에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中宗實錄
明宗實錄
國朝榜目
燃藜室記述
大東野乘

[집필자]

이종호(李棕浩)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